[시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 아니다

입력 2018-10-10 18:58  

"외부 인력 활용은 현대경영 트렌드
법원은 거꾸로 노무도급 부정 판결
불법파견 인정범위 확대해선 안돼"

김희성 <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청년 고용절벽, 고용참사 등의 단어들이 최근 일자리 현실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미국과 일본, 독일 등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고용호황을 누리고 있는 지금 유독 한국만 일자리 침체에 빠져 있다. 노동시장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한 원인이겠지만 전부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주원인으로 꼽는다. 이들은 우리나라 노동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정규직 근로자의 과보호에 집중된 노동관계법 개선이라고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규직의 고용경직성, 즉 정규직의 과보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책 방향은 다르다. 정부는 비정상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기업의 높은 비정규직 의존도 때문이라는 진단에 따라 정규직 전환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법원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최근 판결은 사내도급 근로자 사용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있다.

이 문제는 경제적 여력이 있는 원청 기업이 사내하청근로자를 직접 고용해도 되지 않느냐는 수준으로 바라볼 일이 아니다. 노동법의 오랜 과제인 기업의 경영권과 근로자 보호,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다. 노동법에서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과 보호는 빼놓을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기업들이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분업화·전문화해 나가는 경영전략을 마냥 금지할 수는 없다.

특히 도급과 파견의 구별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파견제도 및 도급계약의 본질과 개념에 대한 객관적이고 규범적인 해석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법원은 구체적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치밀하고 체계적인 논증을 거쳐 당사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법원 판결들은 도급과 파견의 판단에서 법리적으로 일관성과 명확성이 불충분한 측면이 없지 않다. 더욱이 하급심 판결에서는 비슷한 사실관계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결론이 도출되는 상황도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법원은 포스코의 생산관리시스템(MES)을 통한 작업수행을 파견요소인 상당한 지휘·명령으로 해석했다. 이를 근거로 포스코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판결했다. 최근 제조업체의 생산은 전산시스템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사내협력업체도 그 도급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런 시스템에 접속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MES는 현대 제조업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돼 있는 시스템이며, 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한 지휘·명령을 주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보전달을 주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MES를 사용한 작업수행을 파견요소인 사용사업주의 상당한 지휘·명령으로 파악하는 것은 MES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대형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대부분 MES를 통해 생산을 관리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법원이 포스코 판결과 같은 태도를 견지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의 노무도급 사용은 사실상 금지돼 없어지게 될 것이다.

도급계약을 통한 외부노동력 활용은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된 기업의 권한에 속하며, 도급계약은 현대의 노동분업적 경제체제하에서 합법적이고 승인된 거래유형이다. 현대 기업들에 외부 노동력 활용을 통한 기능분화와 전문화는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생존방식의 일환이기도 하다. 사실상 노무도급의 적법성을 부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최근 판결은 오늘날 글로벌 경영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

노사관계 측면에서도 불법파견 인정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최근 판결들이 노사 양보와 합의가 아닌, 소모적 분쟁을 초래함으로써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케 하고 생채기만 만드는 파국의 한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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