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前 한은 총재 "실사구시로 가야 경제가 작동…이념적 원리주의는 안돼"

입력 2018-10-11 17:55  

창간 54주년 - 혁신성장, 성공의 조건

혁신성장의 길을 묻다
(3)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내수확대·양극화 해소·공급확대
새로운 성장 엔진에 담아야

소득주도성장만으론 부족
기업 투자 늘리는 대책 시급

최저임금 인상에 매몰된 건 잘못
속도조절과 지역별 차등화 필요

정부는 10% 기득권 노조가 아닌
90% 근로자 위한 노동정책 펴야

부동산은 투기 수요 차단이 핵심
보유세 1%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고
거래세는 절반 수준으로 인하를

만난 사람=정종태 경제부장



[ 서민준/신경훈 기자 ]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82)는 우리 경제를 비관적으로 봤다. 성장 한계에 봉착한 데 따른 구조적인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정점으로 이미 장기침체 국면에 진입했으며, 이는 정책 몇 가지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책의 조급증을 가장 경계했다. 경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는 김대중 정부 말부터 노무현 정부 중후반까지 한은 총재를 지냈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해 당선을 도왔다. 조윤제 주미대사가 당시 이끈 ‘국민성장’ 싱크탱크에서 자문위원장을 맡아 정책공약 입안에 기여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전반을 보는 통찰력이 매서웠다. 모든 질문에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며 명료한 논리로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박 전 총재와의 인터뷰는 서울 평창동 자택 근처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저성장·고실업·양극화의 삼중고에 당면해 있습니다.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산업화 시대 수출주도성장 엔진이 수명을 다하고 내수주도성장 엔진으로 교체해야 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진통 현상이라고 봅니다. 수출 대기업들은 수익을 국내에 투자해 국내 투자도 매년 두 자릿수 증가했죠. 이 투자는 고용을 증대시키고 가계소득을 높이며 빈부격차를 줄이는 선순환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밖으로는 중국 경제가 부상하고, 세계적인 보호무역화 현상이 나타나고, 안으로는 고비용 구조가 심해지면서 수출 경쟁력이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평균 0%대였습니다. 경제성장률이 2~3%대로 주저앉게 된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국내 투자는 수출 시장이 막힘에 따라 점점 감소했습니다. 매년 두 자릿수로 증가하던 것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7년간 평균 4% 증가에 그쳤죠. 올해는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째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투자가 감소함에 따라 고용 감소, 가계소득 감소, 빈부격차 확대라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우리 경제의 현주소입니다.”

▶경제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수출과 국내 투자의 추세적인 하락과 저출산·고령화 현상, 국제환경 악화 등이 겹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장기 침체에 진입하고 있다고 봅니다. 큰 흐름으로 봤을 때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고, 어떤 정책으로도 단기간에 치유가 어려울 것입니다.”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경제난의 근본 원인이 수출주도성장 엔진이 수명을 다한 데서 왔다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성장 엔진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새로운 성장 엔진은 내수 확대, 양극화 해소, 그리고 국내 투자 증대와 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공급 능력 확충 등 세 가지를 담아야 합니다.”

▶경제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현 정부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으로 내수 확대와 양극화 해소를 추구하고, 혁신성장으로 공급능력 확대를 도모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으로 추진한다면 구체적인 정책은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대기업 소득 보호에서 가계 소득 보호로, 선(先)성장·후(後)복지에서 성장·복지 병행으로 그리고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박 전 총재는 과거 진보 정부 때 한은 총재로 임명됐고, 문재인 캠프에서 문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는 점에서 굳이 성향을 나누자면 ‘좌측’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오해라고 했다. 박 전 총재 밑에서 일했던 한은 고위 간부는 “경제성장이론을 전공한 전형적인 시장주의자다. 다만 성장 과정에서 양극화 문제가 불거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분배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간부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당히 균형 잡힌 분”이라며 “굳이 성향을 얘기한다면 온건 중도에 가깝다”고 했다.

경제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를 들겠습니다. 첫째 복지에 대한 욕구, 쾌적한 환경에 대한 욕구, 분배 개선에 대한 욕구, 이런 쪽에 대한 요구와 재정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소득의 선순환 구조가 차단된 데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대기업은 그동안 수출을 보고 온 건데 수출길이 막히니까 내수까지 막히고 선순환이 안되는 겁니다. 이런 식이면 기업소득은 ‘불임소득’이 됩니다. 투자와 고용 같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거죠. 소위 말하는 시장 실패가 나타난 것인데, 이런 구조를 가만히 두면 성장도 안되고 빈부격차가 커집니다. 이 부분을 정부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현재 경제난은 구조적 문제여서 어떤 정책으로도 단기에 해결이 어렵다는 걸 국민도 알았으면 합니다. 그렇지만 현 정부의 정책에도 시정하고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고 봅니다. 우선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수요 쪽 정책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업 투자를 증대하고 생산성을 혁신하는 공급 쪽의 대책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주요 수단은 소득 재분배 정책인데, 지금은 마치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이 주된 수단처럼 돼 있습니다. 이건 잘못된 것이죠.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과 지역별·업종별 차등 도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완하고 바꿔야 합니까.

“앞으로는 공급 쪽의 대책을 강화해야 합니다. 특히 기업 활동을 잘 뒷받침하고 투자를 유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한 노력은 큰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동 문제에서도 노동유연성을 확대하지 않으면 고소득 근로자의 기득권만 보호하고 신규 취업은 어려워지기 때문에 노동유연성 확대를 위한 노동개혁과 호봉제의 직무급제 전환 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근로시간 단축은 필요하지만 적어도 6개월 이상의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는 정부가 늘리라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기업 투자를 늘리려면 가장 급한 것이 규제 혁파입니다. 아직도 의료 등 중요한 분야에서 풀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그다음이 노동개혁입니다. 세 번째로 각종 인허가를 간소화하고 필요하면 조세 혜택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국내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죠. 그런 노력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도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소득 순환의 문제, 내수시장 부족 문제, 수출시장 문제 이런 것들을 복합적으로 꿰뚫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정부가 노조에 끌려가선 안돼

▶노동개혁이 더디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노동조합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개혁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양대 노총은 노동자의 대표권이 없습니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소수 기득권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죠. 예전에 제가 양대 노총에 질문을 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노조는 조합원만의 이익을 대변하느냐,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느냐, 전체 국민 이익을 대변하느냐, 세 개 중에 어떤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결국 조합원 이익만 대변하는 거 아니냐는 건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정부는 노조도 결성하지 못한 노동자 90%를 위한 노동정책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기존 노조에 너무 끌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경제정책은 실사구시, 실용주의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경제는 시장을 다루는 곳인데 시장은 합리와 효율과 경쟁력을 추구합니다. 경제가 그렇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고 실사구시입니다. 이념적 원리주의로는 안됩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오늘의 중국을 만든 반면 원리주의를 고집한 북한 경제는 크게 침체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점에서 진보 정권의 경제정책도 시장 친화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념적 원리주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요.

“예를 들어 은산분리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특정 분야에 한해 규제완화를 직접 언급하고 나선 것인데도 시민단체 등에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효율과 경쟁을 따지지 않고 이념적 방향만 고수하려는 것이거든요. 이것은 보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이념적 프레임에 갇히면 경제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념적 원리주의에 갇히면 안된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욕을 먹더라도 길게 보고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은산분리를 언급하면서 지난해 문 대통령을 한 차례 만난 얘기를 꺼냈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청와대에서 정책 조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여러 가지를 얘기하면서 은산분리 규제완화도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아 ‘여당 당론으로 안 하기로 정해진 상태여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하고 말았다고 했다. 박 전 총재는 이후 문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으며 현 정부 정책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놨는데 이것으로 집값이 잡힐 것으로 봅니까.

“9·13 대책으로 부동산시장이 잠시 안정될 수 있다고는 보지만 집값은 언젠가 또 오를 것이고 실제 지금까지 매번 그래왔습니다. 근본 문제는 부동산이 개인에게는 주거공간이라기보다 재산 축적 수단으로, 정부에는 부동산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쓰인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집값은 잡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지난 50년간 물가는 30배 올랐는데 집값은 3000배 올랐고 그 피해는 가난한 사람과 우리 후손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근로시간 단축 탄력적 운영을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근본 대책은 공급보다도 투기 수요를 차단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합니다. 선진국의 시가 대비 보유세 수준은 1.5%인데 한국은 0.2%예요. 이걸 첫해에는 시가 대비 0.3% 정도로 인상하고, 10년 뒤에는 1%까지 올리는 단계적 인상 방안을 마련해 국민에게 공표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보유세를 올리는 동시에 거래세는 낮춰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해야 합니다. 한국의 거래세 비중은 3%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봅니다. 세 번째로 보유세를 올리는 만큼 소득세를 경감해 불로소득자가 세금을 더 내고 일하는 사람이 세금을 덜 내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인터뷰 전 부동산정책과 관련된 질문을 꼭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특히 보유세를 확실하게 올려야 한다는 소신이 매우 강했다. 정부가 지난 8월 종합부동산세 강화안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세율 인상폭이 너무 낮아 그게 정책이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교수 출신인 그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데 이어 그해 건설부 장관을 맡아 1년간 부동산정책을 편 경험이 있다.

● 약력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이리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1961년 한국은행 입행
△1976~2001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86~1988년 한은 금융통화위원
△1988년 청와대 경제수석
△1988~1989년 건설부 장관
△1993~1996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1999~2000년 한국경제학회장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
△2006년~현재 중앙대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은 www.hankyung.com에 있습니다.

정리=서민준/사진=신경훈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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