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요인보다 잘못된 정책 탓
소득주도·노동시장 개입 말아야"
이병태 < KAIST 교수·경영학 >
마이너스도 가능하다고 기대치를 낮춰 놓고 작년 같은 달보다 4만5000명이 늘었으니 “최악은 면한 것 같다”는 9월 고용동향 통계를 들여다보면 일자리가 재난적으로 파괴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몇 달 전에만 해도 경제활동인구 감소에도 고용률은 유지되고 있다던 정부의 강변이 무색할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의 허리를 구성하는 30~50대 가구주의 실업이 늘어 소비부진과 함께 가족 붕괴 위험까지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번 통계에는 의심스러운 허수도 많다. 농림어업 분야의 취업자 수가 5만7000명 늘었다. 이는 실업상태에서 귀향한 잠복실업과 최근 급상승한 지역 의료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농촌의 부양가족 품으로 피신한 사람이 늘어난 것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비(非)농림어업 분야의 일자리는 약 30만 개가 줄었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늘리거나 정부가 고용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권과 농림어업의 위장성 취업 등을 감안하면 민간부문의 일자리는 40만~50만 개까지 줄어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업시설관리지원 및 임대서비스, 도소매, 숙박 및 음식점업 등 영세 서비스업종에서 31만6000명이 감소해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 가운데 곧 시행될 10% 추가인상의 또 다른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고용의 질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인 주당 36시간 이상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8% 줄어든 반면 36시간 미만 취업자 수는 10.8% 늘었다. 17시간 이하 초단기 취업자 수도 12.1% 증가하는 등 자투리 일자리가 늘고 있는 추세다. 또 학력이 낮을수록 실업자 증가율도 높아 양극화가 확대될 가능성도 커졌다.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8.8%로 1년 전보다 조금 낮아졌는데 이는 구직단념자가 늘어난 것에 의한 착시현상으로,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2.7%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았다.
자영업자들이 무급으로 일하던 가족을 고용안정기금을 타기 위해 등록하면서 나타난 통계상의 변화인 상용근로자의 증가와 종업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축소를 놓고 고용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과 유리된 것이다. 이는 일자리는 양이 늘어야 질이 좋아진다는 기본 상식에도 반한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기업”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만시지탄이지만 일말의 기대를 품게 한다. 하지만 청와대가 나서서 공공부문에 임시직 채용을 독촉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정부가 단기 일자리를 늘려 부진한 고용지표를 눈속임하려는 꼼수를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기업은 일자리를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을 거스르는 의견을 두려움 없이 낼 수 있는 나라부터 만들고, 어떻게 하면 기업이 신나게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독일은 그렇게 기업인들로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해 성공했다. 기업에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을 주면서 기업활동의 자유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장하면 일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어려움 탓에 일자리의 양을 늘리지 못한 게 아니라 일자리의 양을 줄인 원인 제공자라는 인식이 선행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취임 첫 행사부터 노동시장에 개입해 기업들이 고용을 회피하게 몰아붙였다. 정부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 없이는 일자리 문제를 풀 수 없다. 그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과도한 노동시장 개입의 폐기를 뜻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시대착오적이고 비논리적인 소위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인한 불가역적인 원가 상승과 노사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한동안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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