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ㅣ 추상미 '폴란드에 간 아이들',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인간애'

입력 2018-10-17 09:05  







연기도 소름돋게 잘하더니 연출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적이거나,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서사를 만들어낸 감독 추상미는 첫 작품부터 연출자로서 능력을 입증하며 차후에 선보일 극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1년, 북한 김일성 정권에 의해 폴란드로 보내진 1500명의 전쟁 고아들과 그 아이들을 돌봤던 폴란드 선생님들의 흔적을 찾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추상미가 준비 중인 장편 영화 '그루터기들'의 준비 과정을 담은 프리뷰 작품이기도 하다.

'그루터기들'은 전쟁고아로 폴란드에 갔지만, 병에 걸려 돌아오지 못했던 북한 소녀 김귀덕의 실제 이야기를 극으로 담았다. '폴란드에 간 아이들'은 추상미가 왜 '그루터기들'이란 작품을 준비하게 됐는지를 소개하고, 그 작품에 출연할 탈북민 아이들을 선발하는 오디션을 진행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추상미와 함께 폴란드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난 이송 역시 탈북민 출신으로 오디션에 응시했다. 이송은 '그루터기들'에서 여주인공 귀덕의 친구 역할로 발탁됐다.

밝은 성격,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당찬 자신감으로 추상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송은 폴란드에 도착해서야 차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추상미에게 마음의 벽을 허무는 모습을 보였다. 이송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참사와 부모를 잃은 충격을 동시에 겪어야 했던 아이들이 폴란드에서 어떻게 마음을 열고 적응하는지를 짐작케 했다.

북한에서 15살의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10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을 자식처럼 키웠던 이송은 남한에 오는 과정에서 남동생과 헤어졌다. 추상미에게 "과할 정도로 밝은 아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유독 북한과 중국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는 것을 힘겨워했다. 남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전할 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추상미는 이송을 언니처럼 보듬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폴란드까지 함께 갔음에도 쉽게 속깊은 이야기를 털어 놓지 않았던 이송에게 인간적으로, 감독으로서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이송이 또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온전히 이송 스스로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영화는 폴란드에서 아직도 생존해 있는 선생님들과의 만나고, 그 여정을 함께 한 이솜이 추상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전쟁 고아들의 아픔이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존재함을 보여줬다. 탈북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충격적인 상황들, 폴란드에 간 아이들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었던 선생님의 사연은 정치적으로 치우치거나, 자극적으로 다뤄질 수 있었지만 추상미 감독은 노련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인간애'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메시지의 강요도 없었다. 가치 판단은 빼고 담백하게 당시 상황에 대해서만 소개했다. 북한에서 벌어진 '천리마 운동'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아이들이 직접 쓴 힘겨운 일상이 담긴 편지를 전했지만,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기 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그 아이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졌는지에 더 주목했다.

담담한 연출 빛을 발휘한 부분은 또 있다. 감성적으로만 각각의 사건을 다루지 않은 덕분에 폴란드 선생님들이 북한 아이들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은 더욱 극적으로 전달됐다.

여기에 폴란드 선생님들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였음에 주목하면서 그들이 북한 아이들에게 각별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를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하면서 '인류애'라는 하나의 커다란 메시지를 완성했다.



폴란드 현지 조사를 통해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북한 아이들 뿐 아니라 남한 아이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이 때문에 추상미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 시나리오를 수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첫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공식 초청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은 추상미 감독이다. 내년 초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할 '그루터기들'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 보여준 담담한 감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오는 31일 개봉. 전체관람가. 런닝타임 78분.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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