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밀집 남동·반월·시화산단 가보니…
대부분 대기업 협력업체…주력업종 침체에 직격탄
"52시간 근로제 도입 후 잔업 줄고 월급도 줄었어요"
공장인근 식당도 썰렁 "주말 영업은 생각도 못해요"
[ 김낙훈/김기만 기자 ]
“월화수목 금금금, 낮과 같은 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묻는 말에 한 기업인이 한 답이다. 주말도 없고, 밤낮도 없었다. 기계를 돌렸다. 불가능할 것 같은 납기를 맞춰주자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 됐고, 공장에서 일한 이들은 중산층이 됐다. 그 기지는 산업단지였다. 과거에는 공단이라고 불렀다.
한국 제조업 심장인 공단의 불이 꺼지고 있다. 주말과 밤에 일하는 공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산업 구조의 변화, 생활문화의 변화, 자동화의 결과만은 아니다. 일하게 해달라는 글이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수시로 올라오고, 문을 닫는 중소기업 얘기도 들린다. 불 꺼진 공단의 어두움이 한국 제조업, 한국 경제의 어두운 미래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생산·가동률·고용 모두 나빠져
공장의 낮아진 가동률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장소가 있다. 식당이다. 잔업하는 기업의 근로자들은 단지 내 ‘현장식당(함바식당)’에서 저녁을 먹기 때문이다. 시화산업단지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3~4년 전만 해도 평일 저녁 손님이 50명 이상 찾아왔지만 지금은 20~30명 수준으로 줄었다”며 “그나마 고정 고객은 비교적 건실한 업체 한 곳에서 오는 손님이고 나머지 공장에선 발길이 거의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그 전엔 토요일에도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주말영업을 완전히 접었다고 덧붙였다. 경기가 좋을 땐 한 집 건너 한 집이 잔업할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 시화산업단지다. 하지만 지금은 야근을 하는 공장이 10곳 중 한두 곳에 불과하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인이 보는 미래는 더 어두웠다. 20년째 사업하는 그는 “하반기 들어 일감이 크게 줄면서 주간에도 쉬는 직원이 많아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력 구조조정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저녁 8시께 마지막으로 공장의 불을 끄고 퇴근할 때는 주변이 너무 어두워져 “공단 전체가 암흑세계가 된 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수치는 가동률뿐 아니다. 남동산업단지에서 공장을 가동하는 기업의 생산액은 작년 6월 2조4205억원에서 올 6월엔 2조897억원으로 13.7% 줄었다. 이곳에 전자 자동차 관련 부품업체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남동의 전기·전자제품생산은 1년 새 4947억원에서 3098억원으로 37.3%, 기계는 9707억원에서 8816억원으로 감소했다. 남동의 전자부품업체 K사장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공장이 베트남으로 이전한 뒤 물량이 줄고 있어 자동차용 전장품 쪽으로 생산 제품을 다각화했는데 전장품마저 수요가 위축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력 업종 침체에 고용도 줄어
수도권 특히 시화 반월에는 대기업 협력업체가 많이 몰려 있다. 자동차 전자 조선 철강 등 대기업 2, 3차 협력업체가 많다. 전방산업 침체로 중소기업이 받는 타격은 더 크다. 반월은 입주 업체 중 기계 분야가 2693개사로 가장 많고 전기·전자업체가 2562개로 그 뒤를 잇는다. 전기·전자의 경우 전자부품을 가공하거나 인쇄회로기판(PCB)과 관련된 가공업을 하는 기업이 많다.
이들 3개 단지의 가동업체는 2만3840개에서 2만4116개로 1년 새 276개 늘었다. 올해 6월 기준 가동업체는 남동이 6600개, 반월이 6832개, 시화가 1만684개다. 가동업체가 증가하면 고용인원도 느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들 3개 단지의 총고용인원은 36만2527명에서 35만5640명으로 1년 새 6887명이나 줄었다. 최병긍 중소기업중앙회 안산지부 지부장은 “영세업체 비중은 늘었지만 경기침체 여파로 기존 업체 중에선 감원하는 사례가 많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한 기업체 대표는 “공장 매각을 검토하는 사장이 많다”고 전했다.
◆52시간 근로제로 공단 어둠 짙어져
경기침체, 조선 자동차산업의 어려움 외에 주 52시간 근로제와 최저임금 인상도 공단의 불을 일찍 끄게 하고 있다. 불안을 느끼는 것은 기업인뿐만 아니다. 근로자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식품가공 회사에 근무하는 한 40대 직원은 “상반기까지만 해도 1~2시간 잔업하고 오후 8시께 버스를 타면 앉아서 가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은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도 자리가 텅 비어 있다”고 했다. 그는 주 52시간 근로제에 따라 잔업하지 않는 회사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생산직 직원은 잔업이 줄면 월급도 함께 감소한다”며 “하반기부터 가계비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기업인은 “52시간제 이후 월급명세서를 받은 40대 직원이 찾아와 울면서 일을 더 하게 해달라고 말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52시간제에 맞춰 인원을 충원한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 기업은 일감 부족과 52시간제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일찍 불을 끌 수밖에 없다고 이 기업인은 덧붙였다.
김낙훈/김기만 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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