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주식 매입소각에 기업 투자재원 고갈
대기업 출자규제 탓 고용여력 추락 우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주식시장 침체기에 더 많이 거론되는 ‘자사주’는 의미가 모호하다. 상법과 자본시장법에는 그런 용어 자체가 없고 우리사주가 보유하는 ‘자기 회사 주식’의 의미로 다른 법령 시행규칙 세 군데에 등장할 뿐이다. 회사 대표가 자기 회사 주식을 샀을 때 ‘자사주 매입’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식백과사전의 설명도 각양각색이지만 회사가 ‘자기의 주식’을 매입하는 ‘자기주식’과는 구분해야 한다.
회사 임직원의 자사주 매입과 처분은 회사 재무제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러나 회사가 자기주식을 매입하면 현금은 줄고 자기주식은 자본총계에서 차감하는 형식으로 표시된다. 주주에게 유한책임을 부과하는 주식회사는 채권자 보호를 위해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의 임의 처분을 금지한다. 출자를 반환하는 성격인 자기주식 취득과 감자(減資)에 대한 상법 규제는 엄격하며, 자기주식 소각을 통해 자본금을 줄이려면 주주총회 결의가 필요하다.
임직원의 자사주 매입은 회사 주가가 너무 낮다고 판단할 때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긍정적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엄격한 공시의무가 적용되고 6개월 이내의 단기매매 차익은 회사에 반환할 의무도 부담한다. 회사의 자기주식 취득은 주가 부양이 긴박하거나 장래 수익을 이끌 투자처가 마땅치 않음을 자인하는 부정적 시그널이다. 이사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상법의 취득 제한 규정에 반하는 결의에 찬성한 이사는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한다. 조선업 경기가 지속적으로 악화되던 시기에 주가 관리 목적으로 자기주식을 취득한 조선사가 엄청난 평가손실을 입은 사례도 있다. 그 손실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았고 결국 국민 혈세로 충당했는데 이사에 대한 책임 추궁은 유야무야로 끝났다.
회사의 무모한 자기주식 취득을 방지하기 위해 처분이익에는 법인세를 부과하되 처분손실의 손금 인정을 제한해야 한다. 회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지만 주가가 더 떨어지면 위험이 가중되고 자기주식 보유기간 중에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분식회계와 허위공시 유혹도 커진다. 순환출자 정리 목적의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기주식의 대량 취득에 따른 부작용도 문제다. 지주회사가 투명경영을 이끈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힌 일부 시민단체의 막강한 힘에 휘둘려 출자구조를 무리하게 개편하는 과정에서 회사 자금은 허비됐고 ‘고용대란’은 심화됐다.
노무현 정부는 상장회사의 경우 지분율 20%만 넘으면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지주회사 설립을 몰아붙였다. 대주주 지분이 취약했던 SK는 2007년 17%의 자기주식을 밑천으로 회사분할과 주식교환을 곁들여 자회사 지분이 취약한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했다. 연결재무제표 중심의 국제회계기준(IFRS)에서 실질지배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분식회계 논란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최근 자회사 최저요건 20%를 30%로 높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입법예고로 기업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단행된 ‘신규 순환출자 금지’ 여야 합의를 뒤엎고 문재인 정부는 초법적으로 ‘기존 순환출자 정리’를 압박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의 형사재판까지 맞물려 곤욕을 치른 롯데는 작년 10월 회사분할과 자기주식을 활용해 롯데지주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를 출범시켰다. 오는 11월21일에는 임시주총을 소집해 롯데지주 발행 주식 총수의 10%에 이르는 자기주식의 소각과 4조5000억원 규모의 자본잉여금을 배당재원 활용이 가능한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는 의안을 상정했다. 막대한 자금을 주식시장에 환원하는 일련의 조치는 투자 재원 고갈과 고용 여력 추락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작년에 자기주식 매입 소각에 투입한 자금은 7조원이다. 초우량기업도 성장을 이끌 동력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자금 역류로 시장은 더욱 위축됐고 시가총액이 청산가치에 미달하는 기업이 갈수록 늘어 절반을 넘어섰다. 취업준비생은 대기업으로 몰리는데 정부의 대기업 출자규제는 더욱 심해진다. 선입견 없는 소수 정예 전문가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면서 대기업의 출자규제와 고용 여력을 긴급히 점검해야 한다. 실업의 구렁텅이에서 청년을 건져내는 일이 무엇보다 다급하다.
leem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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