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통과 의석수 충분하지만
한국당 소속 법사위원장 '변수'
판사들 "재판 독립 해친다"
대법원·검찰은 "국회 결정 존중"
[ 김우섭/고윤상 기자 ]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이 2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 행정권 남용과 재판 거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한다. 여야 4당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검찰 기소와 사건 배당이 완료되는 다음달 내에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한국당은 이날 “야당 공조를 파괴하려는 정치 행위에 불과하다”며 즉각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김관영 바른미래당, 장병완 민주평화당,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과 재판 개입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현행 재판부로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특별재판부 도입에 여야 4당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김 원내대표는 “일반 형사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0%에 달하지만 사법 농단 관련 영장은 제대로 발부된 게 없다”며 “사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데 여야 원내대표가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를 위한 의석수는 충분하다. 특별재판부 구성에 합의한 여야 4당의 의석수는 178석이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무소속 의원들과 민중당(1석)을 포함하면 국회선진화법에 명시된 마지노선인 180석을 넘는다. 하지만 제1야당인 한국당(112석)이 강한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고, 여상규 법제사법위원장(한국당)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법안 통과를 위한 시간도 촉박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임 전 차장의 구속 여부는 26일 결정된다. 형사소송법 제203조에 따라 검찰은 구속영장 발부로부터 최대 20일(한 차례 연장 시) 이내 기소하지 않으면 석방해야 한다. 기소 후 사건을 법원에 배당하는 기간을 감안하더라도 11월 중순까지는 특별재판부 구성을 완료해야 한다. 국정감사가 끝나는 29일 이후부터 법안 통과까지 2~3주 안에 끝내야 한다는 의미다.
법조계가 “삼권분립을 해친다”고 반발하는 점도 변수다. 특별재판부 도입이 8·15 광복 이후 설치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1948년) 이후 70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반민특위는 헌법 부칙에 명시돼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특별재판부 도입이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는 삼권분립과 재판 독립을 해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장을 지낸 황병하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 통신망에 특별재판부 설치가 위헌적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쓴 《지금 다시 헌법》이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 절대주의 왕정에서 국왕이 담당 법관을 바꾸는 것처럼 한 사건을 위해 예외 법원을 설치하는 것은 재판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별재판부 설치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낸 특별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법관대표회의, 시민사회가 3인씩 참여하는 후보추천위원회에서 특별법관 3인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임명해 영장 심사와 1·2심 재판을 맡기게 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국회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김우섭/고윤상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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