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피기 '현을 위한 아리아'
낭만적 서정 극치…박수세례
로타의 '현을 위한…'도 감탄사
비발디 '사계' 연주에 객석 흥분
다소 뭉툭하지만 자연 소리 근접
그윽한 여운 이어진 합주의 진수
[ 은정진 기자 ]
20세기 초·중반의 이탈리아 작곡가 곡에서 18세기 초반 비발디 ‘사계’까지. 현대에서 바로크시대로 음악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 흔치 않은 음악회이자 소중한 관객 체험 기회였다. 클래식 팬들의 바뀌는 ‘입맛’을 따라잡으려는 이무지치의 노력도 인상적이었다. 가벼운 활놀림, 빠른 전개 등으로 비발디 ‘사계’를 다시 매혹적으로 살려냈다.
지난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이무지치와 한경필하모닉’ 공연은 팸플릿 문구 그대로 ‘실내악의 전설’이 한경필하모닉과 만난 무대였다. 1951년 12명의 실내악단으로 창단한 뒤 67년 동안 단 한 번도 합주하지 않았던 이무지치가 처음으로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합주하는 변화를 모색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음악회는 2부의 안토니오 비발디 합주협주곡 ‘사계’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1부에서 연주된 현대곡 세 곡도 큰 박수 세례를 받았다. 국내에선 접하기 어려운 곡들인 데다 이탈리아 곡 특유의 생동감과 뚜렷한 색감을 지녀 객석에선 감탄사가 낮게 깔려 나왔다. ‘로마의 소나무’로 유명한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현을 위한 아리아’는 짧은 소품이지만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특징인 낭만적 서정의 극치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영화음악 작곡가로 유명한 니노 로타의 ‘현을 위한 협주곡’은 1965년 이무지치를 위해 작곡된 곡이란 설명이 붙어 있어 더욱 관객의 귀를 잡아끌었다.
이무지치 단원 12명만으로 2부의 비발디 ‘사계’를 시작하자 객석에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하나둘 보였다. 1부의 현대곡 연주 때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원전연주(바로크시대 악기 내지 현으로 비브라토 등을 절제한, 원전에 철저한 연주)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 다소 뭉툭하지만 좀 더 자연의 소리에 가깝고, 그윽한 음의 여운이 이어지는 연주였다. 악장 에토레 펠레그리노가 한 개의 악장을 마친 뒤 땀을 닦고, 끊긴 활의 줄을 정리하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하는 동안 단원들은 그다음 동작이 무엇이 될지 아는 표정이었다. 12명이 한 사람처럼 연주하는 합주의 진수를 보여준 무대였다.
이날 이무지치 단원들은 검은색 턱시도에 같은 색 계열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한경필 단원 21명은 타이를 매지 않고 검은 셔츠와 드레스를 입고 연주했다. 1부의 경우 제1바이올린의 1열은 이무지치, 2열은 한경필 단원, 첼로 1열은 이무지치, 2열은 한경필 단원 식으로 자리잡았다. 양쪽 단원 33명의 연주가 둥글게 잘 섞이도록 노력한 대형이었다.
‘사계’가 끝나고 기립박수가 끊어지지 않자 이무지치는 한경필과 약속한 특별 앙코르 곡을 이어나갔다. 우리 가곡 ‘임이 오시는지’였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우리말 가사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도 앙코르 곡으로 들려주며 객석에 감사 인사를 했다.
악장 펠레그리노는 연주 뒤 “다른 악단과 처음으로 연주해보는데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오늘처럼 이탈리아 곡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 역시 완벽했다”며 “한국 가곡과 이탈리아 바로크음악으로 대표되는 두 나라의 음악문화가 합쳐질 수 있는 무대여서 매우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경필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남은 “함께 연습하면서 세계적인 악단이 연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한 수 배우는 기회가 됐다”며 “낙천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라 그런지 공연 내내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시종일관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소개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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