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진화심리학과 위험성향
여성은 샴푸 고를 때도
잘못된 의사결정 피하려
가격·브랜드·성분 꼼꼼히 따져
남성은 손에 잡히는 대로 선택
금융투자 의사결정도 비슷
변동성 커지는 시장선
투자자 성향 파악 더 중요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재무설계 상담을 하다 보면 여성과 남성의 위험(회피·수용)성향 차이가 눈에 띈다. 여성은 원금 손실 위험을 꺼리는 사람이 많은 데 비해 남성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수익을 원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실제 여러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40대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위험성향을 물어본 결과 여성은 안정형과 안정추구형을 주로 선택했고, 남성은 중립형과 적극·공격투자형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처럼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위험성향을 진단할 수 있다. 갑자기 생긴 돈의 투자 방법이나 위험한 투자에서의 선택 등 13개 상황별로 어떤 선택을 할지 묻고 그것을 종합하는 방식(장경영의 재무설계 가이드 <51> ‘위험수용성향’ 참고)이나, 예상 당첨 금액이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복권 선택 문제(장경영의 재무설계 가이드 <14> ‘자신의 투자성향 알기’ 참고)를 통해 위험성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들에서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위험수용성향이 강하다는 결과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의 위험성향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아쉽게도 그 원인에 대한 속시원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진화심리학이 어렴풋하게나마 해답을 제시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행동하는 이유를 진화적 원인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다. 특히 진화 과정에서 인간 심리가 작동하는 원리가 남녀 간에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는 점에 주목한다. 진화심리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배우자 선택’ 문제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는 자식을 낳아 잘 기를 수 있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은 나이가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배우자를 선호하고 남성은 자식을 보다 많이 낳을 수 있는 젊고 매력적인 배우자를 좋아한다.
이처럼 자식을 낳아 잘 기르는 데 유리한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점, 즉 배우자 선택의 목적에서는 남녀 간 차이가 없지만 그 목적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배우자 선택 방법의 차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위험회피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부모투자패턴’과 ‘긍정·부정오류’로 설명된다.
부모투자패턴의 차이는 자식을 낳는 데 필요한 자원이 남성은 풍부하고 여성은 제한적이란 점에서 서로 다르다는 의미다. 진화심리학에선 남성은 엄청난 수의 정자를 만들고 시간당 1200만 개씩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는 반면 여성은 평생 400여 개의 난자만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원이 풍부한 남성은 배우자 선택에 덜 까다롭지만 여성은 제한된 자원을 낭비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자를 까다롭게 고른다는 얘기다.
부정오류는 남성과, 긍정오류는 여성과 관련된다. 남성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어떤 여성과 관계를 맺지 않는 부정오류를 최소화하려 한다. 이와 달리 여성은 그 남자가 좋은 줄 알고 관계를 맺었더니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는 긍정오류의 최소화를 원한다. 결국 남성은 부정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배우자 선택에서 까다로워선 안 되고, 여성은 긍정오류를 피하기 위해 배우자를 꼼꼼하게 골라야 한다.
배우자 선택에서 남성에 비해 위험회피적 의사결정을 하는 여성의 특성을 금융투자상품 소비 관련 위험성향의 남녀 간 차이를 설명하는 데 적용할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자라면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샴푸 같은 일반 상품을 구매할 때도 여성은 가격은 물론 브랜드, 성분 등 여러 요인을 따진다. 잘못된 의사결정에 따른 위험을 피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회피에 둔감한 남성은 손에 잡히는 대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진화론적으로 뿌리깊은 남녀 간 위험성향의 차이가 금융투자 관련 의사결정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갈수록 투자환경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어느 때보다 투자자 자신의 위험성향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남녀 간 차이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진화심리학이 서로 다른 상황을 과도하게 일반화하고, 사후적으로 꿰맞추기식 설명을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은 감안하는 지혜도 요구된다.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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