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인구절벽 앞에서

입력 2018-11-05 18:28  

김인규 < 경기대 총장 kik9988@gmail.com >


#1 “너희들 결혼하면 자식은 둘만 낳아라!”

10남매를 낳은 어머니께서 자식들에게 늘 당부하시던 말씀이었다. 그래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필자도 자식을 두 명만 낳았다. 어머니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전에 막내인 필자까지, 아들과 딸 다섯씩 낳고 전쟁의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10남매 집’ 하면 대부분이 알아주고 부러워했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의 인구정책 표어가 ‘3남2녀로 5명은 낳아야죠’로 인구 증가에 역점을 뒀기 때문이다.

전쟁 직후 다산(多産) 정책이 1960년대 경제개발정책과 맞물리며 인구 증가 억제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표어 내용도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남아선호 사상으로 계속 인구가 늘어나자 1970년대 들어 보다 적극적인 인구 억제책의 일환으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표어가 바뀌었다. 10남매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어머니도 어느새 정부 정책에 역행한 것처럼 비치자 자식들에게 둘만 낳으라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2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정성껏 키웁시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 산아제한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성과가 미진하자 1980년대 들어 정부는 “선진국에서는 자녀를 한 명씩만 낳는다”며 ‘일등국민 하나 낳기’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인구정책 표어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든가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이란 끔찍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1980년대 들어 우리나라의 출산율, 그러니까 15세 이상 49세 이하의 가임 여성이 낳은 자녀 수가 이미 2.0명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는 수치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보면 이때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다산정책을 펴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랬다면 ‘대한민국이 지도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국가가 될 것’이라고 유엔 보고서가 경고할 정도의 인구절벽 상황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올 2분기 기준 출산율은 0.97로 가임 여성 한 명이 아이를 평생 한 명도 채 낳지 않는다.

#3 “결혼하면 자식을 둘 이상 낳겠다고 약속하겠습니까?”

10여 년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피하게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면 예비 신랑·신부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조건을 수용해야만 주례를 맡겠다는 협박성 제의에 신랑, 신부들은 결혼식장에서 공개적으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외쳐야 할 표어가 하나 남았다. “셋 이상 낳은 부모는 애국자요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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