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침체로 얼어붙은 기업 자금조달 시장
투자심리 위축 '직격탄'…기업, IPO 철회·축소 잇따라
드림텍 상장 연기…노바렉스·디케이앤디 공모규모 줄어
CB 발행기업도 투자자 요구에 한달 새 25곳 조기상환
[ 이고운/김진성/이태호 기자 ] 기업들의 자금조달 시장에 냉기가 돌고 있다. 기업공개(IPO) 계획을 철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의 대체 자금조달처인 CB(전환사채) 시장도 얼어붙는 모습이다.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 길이 막히면서 기업의 투자 및 재무 개선 활동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파 부는 IPO 시장
CJ CGV 베트남홀딩스는 증시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게 증권업계 진단이다. 이 회사는 올 하반기 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혔다. 지난해 회사가 상장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베트남 영화시장의 급성장세에 주목한 투자자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지난 1~2일 시행한 수요예측(기관투자가 대상 사전청약)에서 흥행에 실패하면서 증시 입성에 먹구름이 끼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추진하던 전자부품 제조회사 드림텍도 2일 자진 철회를 결정했다.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자 상장 일정을 내년으로 미뤘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ODM(제조업자개발생산) 1위 회사인 노바렉스와 폴리우레탄 합성피혁·부직포 제조회사인 디케이앤디도 수요예측에서 아쉬운 성적을 내며 공모 규모가 줄었다.
지난 9월부터 카카오게임즈 HDC아이서비스 프라코 아시아신탁 등을 포함한 6개 업체가 줄줄이 연내 상장계획을 공식 철회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IPO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달 일반 청약을 계획하고 있는 공모기업만 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을 포함해 20곳이 넘는다. 공모주시장에서 비인기 기업이 상장 철회 또는 연기를 택하는 사례가 잇따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증권사 IPO 관계자는 “당장 공모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상장에 나설 수밖에 없고, 더 좋은 환경에서 상장하려는 마음이 큰 기업들은 부담이 따르더라도 상장을 철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CB 상환에 내몰리는 기업들
저금리로 CB를 발행한 기업 중 일부는 조기 상환에 내몰리고 있다. 주가가 전환가격을 크게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지자 참다못한 투자자들이 상환을 요구하면서다. 최근 한 달간 코스피지수(하락률 11%)와 코스닥지수(15%)가 10% 이상 추락하면서 CB의 투자 매력이 순식간에 사라져서다.
코스닥 통신장비업체인 알에프텍은 투자자의 조기상환청구권 행사로 지난해 4월 발행한 3년 만기 CB 200억원어치 중 115억원을 지난달 상환했다. 이 CB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발행됐기 때문에 주가 상승이 뒷받침돼야 수익을 낼 수 있다.
시장에선 증시 침체가 지속되면 더 많은 기업이 빚 상환에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출범으로 올해 기업들의 CB 발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유가증권 및 코스닥시장 상장사들의 CB 발행금액은 총 7조3140억원으로 작년 연간 발행규모 대비 278.5% 증가했다. 적잖은 기관투자가가 코스닥벤처펀드를 설정한 이후 투자상품을 담기 위해 CB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CB 발행 붐’이 일었다.
IB업계 관계자는 “저금리로 CB를 찍은 곳이 상당한 만큼 증시가 살아나지 않으면 조기상환을 요구하는 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라며 “이미 전환가격을 낮출 만큼 낮춘 기업들은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기업투자에 ‘된서리’
CJ CGV 베트남홀딩스는 IPO를 통해 최대 990억원을 조달해 베트남 현지 투자 및 인근 국가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 등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차질이 생겼다. IPO 과정에서 CJ CGV 베트남홀딩스 보유 주식을 팔아 최대 330억원을 조달해 차입금을 갚으려던 모회사 CJ CGV 역시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중소형 공모기업 중에서는 회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아 IPO를 시도하는 사례가 많다”며 “대기업도 상장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중소기업들은 차입 등을 적극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고운/김진성/이태호 기자 ccat@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