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언어 표현 뒤에 있는 이데올로기는 은연중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합니다. 그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거대하고 치열한 대결이 바로 언어의 줄다리기로 나타나는 거죠.”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사진)는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열 가지 경기장을 펼쳐 보인다. 비민주적인 표현, 서로 다른 관점과 차별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줄다리기, 세대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도 있다. 신 교수는 8일 인터뷰에서 “언어는 사회와 문화적 맥락이 담긴 자원인 동시에 그 맥락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고 이 줄다리기가 중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 맥락을 짚어내는 첫장부터 흥미롭다.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 간 줄다리기를 다뤘다. 한때 대통령에게 붙이던 ‘각하’라는 호칭은 권위주의 시대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실 각하는 봉건 신분사회 귀족의 호칭 중 하나다. ‘각하’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거나 격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다. 신 교수는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주인인 평등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대통령’에도 봉건군주제의 이데올로기가 묻어난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라는 뜻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기에 신 교수는 ‘대통령’도 ‘줄다리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아직 죽지 않은 죄인이라는 뜻의 미망인(未亡人)이나 남편이 죽어서 이제 부족한 사람이 된 과부(寡婦)라는 표현의 폭력성과 더불어 청년이라는 단어는 왜 여성을 아우르지 못하는지, 기혼과 미혼은 적절한 구분인지 등 지루함 없이 언어 속 숨은 생각과 사연을 따라갈 수 있다. ‘요즘 애들’이 쓰는 말을 다룬 대목도 있다. 외계어 같은 극단적인 줄임말이나 급식체(학교 급식을 먹는 연령대인 10대의 말투)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신 교수는 “어떤 세대든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려고 항상 시도해왔다”며 언어를 옷에 비유했다. 그는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시간과 때, 상황에 얼마나 잘 맞추느냐는 것”이라며 “말도 상대가 누군지 어떤 상황인지에 맞춰 해야 의사소통이 잘 된다”고 덧붙였다.
언어의 충돌을 살펴보면 언어 감수성이 높아지고 이를 통해 성찰적 말하기와 배려의 듣기가 가능해진다는 신 교수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이번 책에서 다룬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사회가 진보하는 한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언젠가 나올 후속편을 예고하는 듯하다.(신지영 지음, 21세기북스, 304쪽, 1만65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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