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기자 ] 내일(11월11일) 오전 11시, 세계가 부산 유엔묘지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에 맞춰 모든 유엔 참전국이 1분간 묵념하며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린다.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에는 16개국 2300여 위의 영령이 안치돼 있다.
기념공연에서는 경기 연천 전투에서 최연소인 17세 나이로 전사한 제임스 도운트 이병(호주)의 사연이 소개된다. 한국에 도착한 지 13일 만에 꽃다운 목숨을 바친 그를 위해 17세 고교생이 감사 편지를 읽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조지 퓨리 상원의장이 방한해 참전국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한다. 이 행사는 2007년 캐나다의 한 참전용사 제안으로 시작돼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날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자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 국가 현충일이며, 미국 재향군인의 날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자국 병사 존 매크래의 시 ‘플랜더스 들판에서’를 방송으로 들려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살아서 새벽을 느끼고 불타는 석양을 보았지/사랑도 하고 사랑받기도 했건만/지금 우리는 플랜더스 들판에 누워 있네.’ 전우의 장례를 치른 뒤 주변에 핀 개양귀비꽃을 보며 썼다는 이 시에 맞춰 사람들은 개양귀비 조화를 달고 다닌다. 영국과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도 개양귀비 화환을 놓고 추모식을 연다.
올해 11월11일은 1차 대전이 끝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파리에서는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등 80여 개국 지도자가 만나 종전기념식과 함께 제1회 파리 평화포럼을 개최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가 사는 지금이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와 비슷해 충격적”이라며 “세계가 전쟁의 교훈을 잊고 자국 우선주의와 극우·국수주의에 빠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처럼 세계는 엄청난 전쟁을 두 차례나 치르고도 상호 대립과 분쟁·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왜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나지 않았는가》를 쓴 역사학자 로버트 거워스가 “전후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위선적 민족주의’ 때문에 인종청소 같은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내일 ‘1분간의 묵념’에 동참하는 세계인이 60여 년 전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를 위해 피 흘린 유엔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면서 미래 평화와 번영의 의미까지 함께 새긴다면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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