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빼면…10대 그룹 영업익 '뒷걸음'
美 금리인상에 신흥국 통화 약세…현대차그룹 '직격탄'
내수 부진으로 LG하우시스·신세계푸드 '어닝 쇼크'
유가 급등에 LG화학·롯데케미칼 등 화학업종 타격
'실적부진→구조조정→경기 둔화' 악순환 가능성
[ 송종현 기자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영업이익(전년 동기 대비)은 올 들어 매분기 감소 추세를 보였다. 글로벌 경기 호황의 영향으로 작년에 ‘역대급 실적’을 낸 것도 이유였지만, 올 들어 미국 금리 인상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대비한 인력 충원 등 비용 부담이 늘어난 영향도 있었다. 그나마 한국의 ‘간판 기업’인 10대 그룹 계열사들은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 증가하는 등 ‘버티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3분기 들어서는 영업이익이 다시 감소세로 돌아섰다. 시장에선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지난 6월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하반기엔 대기업들도 실적에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었다.
‘3각 파고’에 휩쓸린 10대 그룹
3분기 주요 대기업의 실적이 악화된 원인으로는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 △국내외 경기둔화 △유가 급등이 꼽힌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남미 등 신흥국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이 ‘직격탄’을 맞았다. ‘맏형’인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6% 쪼그라들었다. 현대모비스의 3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2811억원에서 올해 2379억원으로 12.1% 감소했다. 기아차는 117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흑자전환에는 성공했지만, 실적 발표 전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인 3338억원에는 64.9% 모자라 ‘어닝 쇼크(실적충격)’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한준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핵심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버팀목이었던 신흥국 시장에서 환율이 미국 금리 인상 등의 요인으로 불안한 흐름을 보인 게 자동차 업종 실적 부진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경기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LG하우시스(영업이익 증가율 -77.7%) 신세계푸드(-39.5%) 등도 안 좋은 성적을 거뒀다. LG하우시스와 신세계푸드의 영업이익은 컨센서스보다 각각 61.7%, 33.3% 적은 ‘쇼크’ 수준이다. 한국의 3분기 성장률은 내수경기 부진 등의 이유로 0.6%에 그쳤다. 미·중 무역전쟁과 그 여파로 인한 중국 경기 둔화는 관련 기업들의 실적을 악화시켰다. 중국의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5%에 그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1분기의 6.4%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중국 관광객 수 등에 실적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세계의 영업이익이 5.5% 감소했다. 10대 그룹 이외 주요 기업 가운데선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24.3%)과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6.5%) 등이 영향을 받았다
이 밖에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3분기 영업이익은 국제 유가 급등의 영향으로 34.3%, 22.8% 줄어들었다. 지난 8월 중순 배럴당 65달러(서부텍사스원유 기준)였던 국제 유가는 9월 말 7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 영향으로 이들 기업의 핵심 생산제품인 에틸렌의 스프레드(제품가격에서 생산비용을 뺀 금액)가 지난해 연평균 t당 701달러에서 올 3분기 685달러로 2.28% 감소했다.
‘이익 감소 고착될라’ 우려 커져
3분기 실적 악화 원인 가운데 하나인 국제 유가는 4분기 들어 안정되는 추세다. 지난달 3일 배럴당 76.31달러까지 치솟았던 WTI 가격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 9일(미국 현지시간) 배럴당 60.19달러로 마감했다. 그러나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은 여전하고, 국내외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10대 그룹 계열사까지 번진 실적 부진이 ‘기업 구조조정→국내 경기둔화 가속화→산업계 전반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해운·자동차 부품업계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박상현 리딩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중 무역전쟁이 내년까지 이어지면 한국 간판기업들의 수출 부진이 심화되면서 영업이익 감소 추세가 고착될 것”이라며 “실적 부진이 기업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국내경기 둔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중심의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기조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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