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보험료까지 내주겠다는 경기도
내년부터 '생애 최초 청년국민연금' 사업 시행
'추납제도' 활용한다지만 '양극화만 초래' 비판도
'생색내기 좋은 복지' 전국 지자체로 번지면
연금 고갈시기 훨씬 앞당겨 질 수밖에…
지자체 복지사업 '부동의 권한' 없앤 복지부
이재명 지사가 밀어붙이면 막기 힘들어
[ 김일규 기자 ] 경기도가 내년에 만 18세가 되는 지역 청년 16만 명의 국민연금 보험료 한 달 치를 대납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후보 시절 청년복지 공약의 하나로 내걸었던 ‘생애 최초 청년국민연금’ 사업이다. 지방자치단체 복지사업은 중앙정부 협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경기도는 보건복지부와 협의도 마무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예산으로 147억원을 잡았다. 이 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청년배당 등을 밀어붙였을 때와 비슷한 방식이다. 청년배당은 결국 관철됐다.
사업이 시행되면 경기지역 청년들은 실제 내는 보험료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나중에 받게 된다. 경기도는 이들이 65세부터 100세까지 받는 연금액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7800만원 더 많아진다고 계산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수명인 85세까지 받는다고 가정하더라도 경기지역 청년은 노년기에 연금으로 다른 지역 청년보다 3100만원을 더 받아가게 된다.
이는 국민연금 전체 재정에는 큰 부담이 된다. 20조~50조원의 급여를 추가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식으로 국민연금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의 사업이 전국 지자체로 퍼져나가면 연금 고갈 시점(2057년)은 훨씬 더 당겨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년들은 미래에 연금을 더 받는다는 유혹에 지금 당장 보험료를 내겠지만, 정작 이들이 연금을 받을 시점에는 연금이 고갈돼 받을 수 없게 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경기도 청년 위해 국민연금 축내겠다?
경기도의 청년국민연금 사업은 내년부터 지역 내 만 18세 청년 16만 명의 첫 달치 국민연금 보험료(9만원)를 대신 내주는 사업이다. 향후 보험료 추후납부(추납) 기회를 제공해 국민연금 수급액을 늘려주려는 목적이다.
국민연금은 만 18세부터 가입 대상이지만 학생, 군인, 주부 등 소득이 없는 경우 보험료를 안 내도 된다. 대신 그만큼 가입기간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이라도 보험료를 내고 가입한 뒤 나중에 소득신고 또는 임의가입을 통해 못 냈던 보험료까지 내면 그만큼 가입기간을 더 인정받을 수 있다.
경기도의 지원으로 18세에 보험료를 한 번 내고 10년간 못 냈더라도 이후 소득(월평균 300만원 가정)이 생겨 그동안 못 낸 보험료 약 3200만원을 추납(60세 전까지 60회 분납 가능)하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세부터 85세까지 약 31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고 경기도는 설명한다. 100세까지 산다면 약 78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납입기간이 길수록 수급액이 훨씬 더 커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 ‘따라 하기’ 부추길 듯
경기도의 사업에 대해 “지역 청년 16만 명을 위해 전 국민이 모은 국민연금을 헐어 쓰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경기도가 사업을 본격 시행하면 다른 지자체 역시 따라 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큰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생색을 낼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재정수지엔 악영향을 미친다. 이 지사 재임 4년간 매년 16만 명, 총 64만 명이 혜택을 볼 경우 약 50조원의 연금 급여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는 게 김순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의 지적이다. 다른 지자체까지 따라 하면 지출 규모는 훨씬 커진다. 그만큼 고갈 시기는 당겨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기도가 현재 시행 중인 추납제도를 활용하는 것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10년간 3200만원을 납부하기 어려운 청년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소득 양극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들어 ‘강남 아줌마’를 중심으로 추납을 이용한 ‘국민연금 재테크’ 바람이 불면서 추납제도가 돈 있는 여유계층의 재산 불리기 수단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복지부, 검토 중이라지만…
경기도의 협의 요청을 받은 복지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특정 지역민을 위해 20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매달 쌓고 있는 기금에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것이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 강화론자인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가 청와대 사회수석에 임명됨에 따라 ‘덜 내고 더 받는’ 개편안을 마련하는 데도 벅찬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기도 사업에 대해 “여러 부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인 만큼 깊이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지부가 제어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많다. 올 들어 사회보장제도 협의 지침상 지자체 복지사업에 ‘부동의’할 권한을 스스로 없앴기 때문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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