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장서고 상처입는 자리란 걸 알아야
김진수 중소기업부 차장
[ 김진수 기자 ] 내년 2월 말 ‘제26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선거’가 치러진다. 4년마다 360만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중기(中企) 대통령’을 뽑는 중요 행사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전직 회장과 현직 부회장 등 6~7명의 협동조합 이사장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회장 후보들은 선거일 20일 전인 내년 2월께 등록하고 공식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불법 선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앙회장은 간접선거로 뽑는다. 협동조합 이사장들이 조합원을 대표해 회장 투표권을 갖는다. 중앙회에 등록돼 있고 선거권이 있는 협동조합은 전국에 600개 정도 된다. 이들 이사장의 표심을 잡아야 회장이 될 수 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당선자가 나오면 회장이 결정된다. 그렇지 않으면 최다 득표자와 차순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재투표한다. 통상 1차 투표에서 과반수가 나온 사례가 드물었다. 이전에는 선거 후보로 나서려면 이사장 10%의 추천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천제가 폐지됐다. 그러다 보니 이사장들의 마음속 지지 후보가 누군지 알기 더욱 힘들어졌다.
출마 예정자가 이사장들을 만나면 다들 “도와 드려야죠”라는 답을 듣는다고 한다. 면전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매번 중앙회 회장 선거 후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것도 겉과 속이 다른 표심 때문이었다. 선거 후유증은 부정선거 및 금권선거에 따른 고소·고발로 요약된다. ‘20낙(落)30당(當)’이라는 말과도 연관이 있다. ‘20억원을 쓰면 떨어지고 30억원이면 붙는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번엔 선거자금으로 50억원은 써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회도 이런 고질적 병폐를 근절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손잡았다. 차기 회장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 중앙선관위에 선거관리 위탁을 결정하고 최근 ‘중앙선관위 선거관리사무소’를 열었다. 불법 선거운동 위반자를 조사·단속하는 선거관리 사무에 나섰다. 선관위의 단속 대상이 되는 불법 선거운동 행위는 △당선·낙선 목적의 금품 제공 △후보자 비방·허위사실 공표 △선거운동 목적의 호별 방문이나 집회 △선거운동 기간·방법을 위반한 운동 등이 포함된다.
회장 선거의 더 큰 부작용은 중소기업계를 대표해야 할 중앙회가 ‘반쪽짜리 대변자’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선거 과정에서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편 가르기가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회장 당선인은 자신을 지지한 이사장들을 중심으로 부회장단과 이사진 등 지도부를 구성한다. 상대 후보를 지지한 이사장들은 중앙회와 멀어진다. 동시에 불법 선거라며 소송전을 시작한다.
벌써 회장 선거를 걱정하는 이사장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내수경기 침체, 고용난 등 현안이 수두룩한데 중앙회가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이사장은 “중소기업들이 생존의 끝자락에 서 있다”며 “서로 협심해도 모자랄 판에 중앙회장 선거가 분란의 불씨가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방에 있는 또 다른 이사장도 진정으로 중소기업인을 통합하고 정부에 제 목소리를 내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중앙회장 자리는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권력을 준 사람들을 위해 맨 앞에서 싸우고 상처 입는 자리라는 것을 아는 회장을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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