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vs 범야권 '과반 점유 전쟁'
與, 정원 늘려 '7·6·2·1' 구성 제안…한국당, 정원 15명 유지 고수
공공부문 일자리·남북경협 예산, 유지냐 삭감이냐 '전초전' 양상
예산안 자동부의제 때문에…
여야 이견으로 합의 못하면 정부 원안 12월1일 자동 상정
시간싸움서 정부·여당이 유리
[ 박종필 기자 ]
내년도 예산안을 본격적으로 심사할 국회 ‘예산안심사소위’ 구성을 놓고 여야의 지루한 대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법정 처리 시한이 있기 때문에 여야가 당장 17일부터 소위를 꾸린다고 해도 470조5000억원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를 단 2주 만에 마무리해야 한다. 소위 구성이 늦어질수록 ‘날림 심사’가 될 공산이 크다. 12월2일까지 법적으로 예산안의 본회의 처리를 마쳐야 하는 관계로 정부 여당은 심사 기간이 짧아지는 게 나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반면 야당은 공세를 펴면서도 시간에 쫓기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느긋한 정부 여당…속타는 한국당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6일에도 안상수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이 잇따라 회동했지만 예산소위 구성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계획대로라면 정부 부처별 예산질의가 끝난 후인 15일부터는 예산소위가 첫 회의를 시작했어야 한다. 예산소위를 꾸려야 한다며 여야 원내지도부가 준비에 착수한 지도 1주일이 흘렀다.
예산정국의 주도권은 여당과 정부가 쥐고 있다. 2014년부터 적용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탄생한 ‘예산안 자동부의제도’ 때문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국회 심사는 매년 11월30일 밤 12시까지 마무리하도록 돼 있다. 다만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하면 예산심사 기간을 며칠 더 연장할 수 있다. 국회선진화법 이전에는 야당이 예산심사 주도권을 쥐었으나 기한을 법적으로 정한 이후부터는 여야 처지가 바뀐 셈이다. 여야가 예산안 심사에 합의하지 못하면 정부예산 원안이 12월1일에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원안을 제출한 정부가 ‘시간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야 협의가 안 되면) 정부 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여당이 야당 요구를 반영하지 않은 예산안 원안을 본회의에 올렸을 경우 향후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예산소위가 어떻게든 꾸려져 심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태까지 여야 합의 없이 예산안을 처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여권으로서도 부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소위 법적 근거 만들어야”
여야는 예산소위에서 ‘범여권’과 ‘범야권’ 중 누가 과반을 차지할지를 놓고 치열한 ‘수(數)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은 예산소위 정원을 1명 더 늘려 민주당 7명, 자유한국당 6명, 바른미래당 2명, 비교섭단체(민주평화당 혹은 정의당) 1명이 되도록 구성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당은 관례를 들어 예산소위 정수를 15명으로 고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매년 예산소위 위원을 15명으로 해 왔던 게 변함없는 관례”라며 “소위 정원 15명, 한국당 6석 보장 등 두 가지 원칙만 지켜지면 예산소위가 어떻게 구성돼도 무방하다. 굳이 비교섭단체 의원을 소위에 넣으려면 민주당 몫을 양보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여야 3당이 이 같은 복잡한 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범여권(민주당·비교섭단체), 혹은 범야권(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과반 확보 전략 때문이다. 한국당 예결위 관계자는 “이미 문재인 정부 주요 국정과제가 상당수 정부 원안에 반영돼 있는 만큼 예산심의 기간이 짧아지면 야당이 손해지만, 예산소위 구성에서마저 여당 주장에 밀리면 남북경제협력 예산 등 현 정부 주요 국정과제 예산을 삭감할 힘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국회법상 예산소위 정수가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다는 점도 매년 여야 간 정쟁을 부르는 원인으로 꼽힌다. 예결위 50명 위원이 모두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만큼 임의로 소위를 꾸려 증감액을 논의한다. 법 규정이 아닌 만큼 여야 합의가 없으면 구성이 쉽지 않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역대 예산소위는 1964년 제6대 국회에서는 9명이었고, 1973년부터는 11~13명을 유지했다. 소위가 15명으로 굳어진 것은 2010년 18대 국회 때부터다. 국회 관계자는 “매년 여야 합의로 들쑥날쑥하게 소위 정수를 정할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관련 규정을 명문화해 정쟁 요소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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