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기에도…쌀값 치솟고 시장엔 쌀부족 왜?

입력 2018-11-16 17:43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산지 80㎏ 기준 19만3696원
1년여 만에 50%나 '껑충'

38년 만에 수확량 최저인데다, 농가는 가격상승 기대에 출하 미뤄
올해 새로 매기는 쌀 목표價도 영향…야당 '80㎏=24만원 이상' 주장

일각에선 "북한에 쌀 지원해
물량 부족하다" 터무니없는 루머도

정부 "가격안정 위해 비축미 풀겠다"
농민단체들 반발 거세 고심



[ 임도원/김보라 기자 ]
쌀값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고 있다. 햅쌀이 공급되는 벼 수확기에는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 수확기는 예외다. 쌀값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자 항간에는 ‘북한에 쌀을 지원해 쌀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루머까지 퍼질 정도다.

쌀값 상승은 농가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정부로선 농가뿐 아니라 도시 자영업자 생계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최근 쌀값 급등은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연내 비축미 5만t 방출 등 소비자와 영세 자영업자, 식품업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쌀값 안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거세 고심하고 있다.


정부, 쌀 농가 위해 매년 직불금 보전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쌀값(산지 80㎏ 기준)은 지난달 25일 10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치인 19만3188원을 기록한 데 이어 이달 5일에는 19만3696원으로 올랐다. 평년 대비 23.5%, 전년 대비 27.2% 오른 가격이다. 지난해 최저였던 6월(12만6767원)과 비교하면 52.8%나 높다.

소비자가 시장에서 구매하는 가격은 20만원을 넘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날 기준 쌀 평균 소매가(80㎏)는 21만4472원이다. 전년 대비 26.4% 올랐다. 가계는 쌀 소비가 줄어 쌀값 급등을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한다. 반면 식당 등 자영업자들은 재료 비용이 크게 늘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쌀값 상승은 지난해 정부의 대규모 쌀 시장격리가 불씨 역할을 했다. 2016년 풍년이 들며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쌀 산지 가격이 12만원대로 떨어지자 정부는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쌀 37만t을 시장격리곡으로 매입했다. 지난해 전체 쌀 생산량(397만2000t)의 10%가 넘는 규모였다. 이는 쌀값을 올려 농가 소득을 보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쌀값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15만원대로 올랐고 2월에는 16만원대, 3월에는 17만원대, 10월에는 19만원대를 돌파했다. 덩달아 외식물가와 장바구니물가도 뛰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생활물가지수는 2.4% 올라 지난해 9월(2.9%) 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 즉석밥 ‘햇반’(210g) 가격을 14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렸다. 편의점들은 올 들어 삼각김밥 가격을 100~300원씩 인상했다.

내년 초 농협 조합장 선거도 영향

수확기에도 불구하고 쌀값이 잡히지 않는 이유로는 우선 올해 생산량 감소가 꼽힌다. 통계청이 지난 13일 발표한 ‘2018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86만8000t으로 지난해(397만2000t)보다 2.6% 감소했다. 전국적으로 냉해 피해가 컸던 1980년(355만t) 후 38년 만의 최저치다. 낟알 형성 시기에 폭염과 잦은 비가 이어지고, 정부의 다른 작물 재배 유도 정책으로 재배면적이 감소한 데 따른 결과다.

쌀 생산량이 줄자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 쌀 도매업자들과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쌀을 쌓아두고 내놓지 않고 있다. 쌀 도매업계 관계자는 “농민들 사이에서는 쌀 생산량이 통계청 조사보다 더 줄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며 “대농들을 중심으로 쌀값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출하를 미루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쌀값은 더 뛰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농협이 농민들로부터 목표 물량의 70~80% 수준밖에 쌀을 수매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5년 주기인 쌀 목표가격이 올해 새로 정해지는데, 대폭 높게 책정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쌀값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쌀 목표가격은 2013년 18만8000원(80㎏ 기준)으로 정해졌지만 정부와 여당은 올해 19만6000원으로 잠정 결정했다. 야당 일각에서는 24만원 이상을 주장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20만원을 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문 대통령 공약대로 쌀 목표가격에 물가 상승률을 반영하면 최소 24만원이 된다. 쌀 목표가격은 직접적으로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오를 경우 농민의 가격 상승 기대심리를 높인다는 것이 쌀 유통업계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3월 농협 전국 단위조합의 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나서는 농협 조합장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농가에서 쌀을 높은 가격에 수매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가 부인하고 있는데도 ‘북한에 쌀을 보내 시장에 물량이 부족하다’는 괴담도 퍼지고 있다. 정부가 내년에 북한에 쌀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설사 쌀을 보낸다 하더라도 과거처럼 수입쌀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농민단체들은 현재 쌀값은 과도한 수준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정학철 전국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밥 한 공기 분량 쌀값이 242원으로 자판기 커피 한 잔 가격도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며 “농민들이 밥 한 공기 분량 쌀에 최소 300원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김보라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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