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윤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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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신민회 창설멤버로 참여했고, 신(新)문물을 가르치고 항일 민족교육을 하는 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웠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자 여섯 형제와 그 가족들을 이끌고 만주로 갔다. 전 재산을 모두 팔아 마련한 40만원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 자금을 현재 가치로 따지면 6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에는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다.
그는 1931년 조선 무정부주의자 조직인 항일구국연맹과 비밀행동조직인 흑색공포단을 조직해 일본 관료들을 위협했다. 1932년 다롄으로 이동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60대 노인이던 그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그해 11월17일 순국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정확히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회영 형제 중 5형제가 독립운동 과정에서 순국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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