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상생기금은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당시 정부와 여야의 합의에 따라 지난해 3월 조성됐다. 여·야·정은 농어촌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총 1조원을 모으자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모금액은 505억원에 그쳤다. 대부분 공기업들이 냈다. 그러자 국회는 지난 국정감사 때 대기업 5곳 임원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닦달한 데 이어 경제 5단체 관계자들을 불러 출연을 독려했다.
이번엔 참석자 명단을 기업과 상의조차 없이 정한 뒤 통보했다고 한다. 의원들은 “출연 실적이 저조해 유감이다. 실행계획을 내놔라”는 등 압박성 발언들을 쏟아냈다. 여당 내에서조차 “권력형 앵벌이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장관들과 의원들은 자발적 권유라고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팔을 비트는데 어느 기업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겠는가. 기업으로서는 국회에 불려가는 것만으로도 압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때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냈다가 호되게 당한 트라우마도 있다. 그런 마당에 “정권이 바뀌어도 재판에 안 세우겠다”며 회유성 발언까지 했다니 어처구니없다. 이런 식으로 기업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은 명백한 준조세이며 없애야 할 적폐다. 농어민을 위해 돈이 꼭 필요하다면 예산으로 편성하는 것이 옳다.
기업은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사면초가 신세에 처해 있다. 기업이 춤을 추게 해줘도 모자랄 판에 정부와 정치권은 빚 독촉하듯 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북한과 거래하는 기업들에 철퇴를 가하는 상황에서 여당은 우리 기업인 100여 명의 방북을 추진해 기업에 부담을 주고 있다. 언제까지 기업들은 정치권이 부르면 불문곡직(不問曲直) 달려가야 하고, 요청하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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