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조업이 살아나고 있다"는 인식이 걱정스런 이유

입력 2018-11-21 17:43  

정책 수립의 첫 단계는 정확한 현상 파악이다. 벌어지는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제조업이 살아나기 시작했다”는 최근 청와대의 경제 상황 인식은 걱정스럽다. 사방에서 울리는 주력산업 위기와 경기침체 장기화 경보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 생산이 다시 증가했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일부 수치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업종이 처한 현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 8~10월 자동차 생산 실적은 97만31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6.4% 늘었지만, 예년보다 길었던 작년 추석 연휴와 파업의 ‘기저(基底)효과’ 영향이 크다. 조선업도 세계시장 점유율이 지난 10월 44%로 다시 1위에 올랐지만, 수주량은 호황기인 2007년의 20%에도 못 미친다. “내년 업황이 예측불허여서 겨우 연명하고 버티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 하소연이다.

성장 견인차인 대한민국 제조업이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산업 현장과 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올 1~9월 제조업 공장가동률(72.8%)은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에 최저다. ‘수출 버팀목’인 반도체 호황이 꺾이고 있지만 철강을 비롯한 주력 산업들이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들은 “큰 틀에서 정책 수정은 없고, 경제 기초체력도 이상 없다”(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고용 상황은 엄중하지만 경제위기는 아니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현 경제는 위기가 아니며, 소득주도 성장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고집하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말과 판박이다.

“정부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 잘못된 인식이 이어지고, 경제살리기 등 시급한 과제가 정책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제조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있다”는 문 대통령 발언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도 했다. 누가 무슨 이유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건가. 경제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는데도 대통령을 오도하는 일이 방치돼서는 곤란하다. 현실과 유리된 ‘희망적 사고’로는 제대로 된 처방을 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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