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칙중심 회계'의 위기와 삼바 사태 교훈

입력 2018-11-21 18:16  

"IFRS의 키워드는 '원칙중심'
기업 재무제표 작성 리스크 커져
원칙회계 향방 삼바 대처에 달려"

조성표 < 경북대 교수·한국회계학회장 >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이뤄진 회계처리가 최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분식으로 판정됐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11년 우리나라는 회계에 대한 국제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해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면 도입했다. 도입 당시 가장 매력적인 용어가 ‘원칙중심 회계기준’이었다. 회계기준에서는 기본 원칙만 규정하고, 기업은 이 원칙에 기초해 자신들의 경제적 실질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회계정책을 결정,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중심 회계가 초기에는 문제없이 적용되는 듯하다가 8년째 되는 올해 대형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회계처리의 1차적인 책임은 해당 기업에 있으며, 감사를 맡은 외부감사인은 문제를 적시할 임무가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경우 그 책임을 기업과 회계법인에만 묻기는 어렵다. 원칙중심 회계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 및 인프라가 미비한 것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칙중심 회계기준인 IFRS 도입 이후 과거 규정중심 회계기준에서 이뤄졌던 질의 회신이나 집행 지침, 해석 지침 등이 주어지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또 추상적인 기준과 회계처리 대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회계감사 및 감리 과정에서 회계기준 해석을 놓고 관계 집단 간 견해 차이로 인해 논란이 되는 사례가 종종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 비상장주식 가치평가, 연구개발비 자본화, 그리고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사례처럼 연결범위 결정 시 ‘지배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 등에서 의견 차가 나타나고 있다.

원칙중심 회계기준 아래서 회계 처리는 재무제표 작성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기업들은 외부감사에서 또는 감리나 소송과정에서 본인들이 올바른 판단을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제표 작성 리스크가 현저히 커졌다고 한다.

지금은 과도기적으로 ‘회계의 위기’다. IFRS를 도입해 대외적 신인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대내적으로는 기준의 모호성으로 인해 기업과 감사인들은 어떻게 회계 정책을 결정하고 감사하는 것이 안전한 길인지 알 수 없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삼바사태’는 원칙중심회계가 우리나라에서 아직 학습 중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학습 과정에서 습득한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의 위기를 발전의 원동력으로 바꿔야 한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책망하기보다 각 부분에서 원칙중심회계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은 원칙에 충실한 회계처리가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감사인들은 전문가적 의구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감사에 임했는지, 감독당국은 회계원칙에 충실하게 공정한 감리를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회계에 대한 기업과 감사인들의 불안감을 덜어줘야 한다. 회계기준에서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선 어떤 과정을 통해 회계정책을 결정하고 감사해야 하는지 적법한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러 회계주체들이 진지한 토론을 통해 원칙중심회계를 구현하는 체계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하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지난여름 미국 회계학회에서 주요 국가 회계학회장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영국 회계학회장인 리사 잭 교수를 만났다. 영국은 원칙중심회계의 본산인 만큼 “원칙중심회계가 제대로 구현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성실성(integrity)”이라고 답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실성 부족으로 원칙중심회계가 좌초할지 아니면 원칙중심 회계를 통해 우리의 성실성이 높아질지는 ‘삼바 사태’를 어떻게 다루고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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