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끊임없이 번민했던 인간 세종 이야기

입력 2018-11-23 00:14   수정 2018-11-26 17:53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공감대 넓혀
여닫이문 활용한 무대 디자인도 돋보여

원종원 <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뮤지컬 평론가 >



조선의 건국과 이방원의 왕권 강화, 한글 창제를 둘러싼 세종대왕 일대기는 수많은 문화 콘텐츠의 원형으로 활용되며 인기를 누려온 역사물의 대표적인 소재다. 안방극장의 경우만 해도 유아인 김명민 신세경 등이 등장해 인기를 누렸던 ‘육룡이 나르샤’나 한석규 장혁 윤제문 등이 출연한 화제작 ‘뿌리 깊은 나무’,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종 이방원역을 맡은 유동근의 연기가 돋보였던 ‘용의 눈물’이나 세종역의 김상경이 인상적이었던 ‘세종대왕’ 등이 모두 엇비슷한 역사를 바탕으로 인기를 누렸던 문화적 산물들이다.

뮤지컬 ‘1446’도 이 소재로 꾸몄다. 줄거리는 세종대왕의 인생여정이다. 소재적인 특성은 아무래도 최근 등장한 인기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이야기는 ‘육룡이 나르샤’ ‘뿌리 깊은 나무’와 중첩되는 부분이 자주 보인다. 다만 TV 드라마와 차이점이 있다면 세종의 인간적인 번민에 대한 묘사가 주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한글 창제는 말할 나위 없거니와 셋째 아들인 그가 왕위에 오르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아버지의 의지 탓에 장인인 심온을 제거한 후 중전을 마주하게 되는 운명을 겪게 되며, 끊임없이 자신을 해하려 하는 옛 고려 세력인 전해운 대감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오히려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될수록 그는 단순히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끊임없는 고민과 번민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인물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공감을 느끼게 하는 것과 같은 구도이자 접근이다. 이것이 이 뮤지컬이 지닌 재미이자 매력이다.

‘1446’은 세종이 모든 역경을 딛고 한글을 반포한 연도다. 무대는 시종일관 한옥의 격자문양이 담긴 문 모양의 세트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정된 세트에서의 움직임이 아니라 때로는 무대 위나 아래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백스테이지에서 나오기도 하며 다양한 공간 창출이나 변화를 이뤄낸다. 밀고 당기는 미닫이문이 아니라 옆으로 열고 닫는 여닫이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야기의 배경이 다른 장면으로 효과적으로 전개되는 틀거리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전통 가옥의 구조적인 특성을 반영해 이야기에 호기심을 더하게 만드는 장치로서도 큰 역할을 한다.

‘이야기를 열고 닫는다’는 무대 콘텐츠로서 뮤지컬의 정체성 또한 반영하고 있는 듯해 흥미롭다. 물론 서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미닫이문과 달리 그 확장성이 훨씬 더 광범위한 여닫이문 세트를 활용함으로써 장면 스케일을 때로는 크게, 반대로 때로는 작게 활용하는 재미 또한 담아낸다. 여러 겹을 합하면 큰 대궐이 되기도 하고 두 겹만 더하면 쪽문이 되는 셈이다. 조선이라는 배경과 시대, 장소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는 틀거리로도 잘 활용된다. 무대 디자이너 김대한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지방자치단체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도 화제다. ‘1446’은 경기 여주시가 전체 제작비의 30%가량을 댔다. 소재나 주제, 참여자에 제한을 많이 둔 과거의 지자체 뮤지컬들과 달리 보다 열린 시도와 참여로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극적 구성에 탄력적인 대응을 하면서 작품의 깊이와 완성도를 더하게 된 좋은 사례가 됐다. 비슷한 실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특별히 좋은 선례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더 반갑다.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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