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국가들 무역 적자 불만
"단기 성과 집착하면 역풍 우려"
공무원들 신남방특위 근무 꺼려
낙관보다 문제점 진단 필요
박동휘 정치부 기자
[ 박동휘 기자 ]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은 지난달부터 “신남방이면 뭐든 된다”며 일감을 찾느라 분주하다.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순방을 계기로 신남방정책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돈이 되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기업도 대통령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 몸이 달았다. 현지 한국계 A은행 관계자는 “한 대기업 계열 건설사가 2년 전에 대출 승인이 거절된 프로젝트를 다시 들고 왔다”며 “리스크가 커 보류했는데 이번엔 한국 본점의 보증까지 받아 왔더라”고 했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국정 과제엔 ‘성과우선주의’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멀리서 사례를 찾을 것도 없다. 현 정부가 적폐로 몰며 실패 사례를 뒤지고 있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 자원개발이 그랬다.
청와대는 임기 중인 2020년까지 아세안에서 무역액 200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걸었다. 3년 안에 지금보다 25%를 늘려야 한다. 기업과 관료들도 이를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그러나 신남방정책의 목표로 무역액을 내세우는 게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우리에게만 유리한 손익계산서를 가정하고 있다면 과거 일본이 직면했던 ‘경제적 동물’이란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대부분은 한국과의 교역에서 무역역조 현상을 겪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만 해도 올 하반기에 잇따라 수입규제정책을 내놓고 있다. 김영채 주아세안대표부 대사조차 “한국은 아세안으로부터 이미 많은 것을 얻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신남방정책은 정치·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총합이 이뤄져야 기대한 바를 이룰 수 있는 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정부 내에선 벌써부터 다른 소리가 들린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에 배속되는 걸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신남방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도 걸어보지 못한 대외 정책의 중대한 전환이다. 한반도 주변 4강에서 벗어나 새 시장을 개척하고, 외교적 우군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과제다. 이달 중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참석국들은 한국의 ‘러브콜’에 모두 반색했다.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신남방정책 발표 1년을 넘긴 현시점에서 필요한 건 낙관보다는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진단이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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