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국민청원 게시판'된 지자체 시민청원

입력 2018-11-23 18:03  

서울·전남·성남·여수시 등 靑 벤치마킹해 속속 개설
답변기준 도달 없어 '유명무실'



[ 임락근/이인혁 기자 ] 지방자치단체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흉내내 온라인 시민참여 플랫폼을 속속 개설했지만 시민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자체 측이 답변할 의무가 있는 기준을 충족하는 청원이 전무할 정도로 시민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청와대가 여론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 없는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월 서울시는 기존 정책 제안 플랫폼인 ‘민주주의 서울’을 개편해 시의 답변 의무 기준을 신설했다. 50명 이상이 공감 버튼을 누르면 관련 부서에서 답변하고, 공감 수가 500명을 넘어서면 시민이 해당 안건을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이 열린다. 공론장에 5000명이 참여하면 시장이 답변한다. 그러나 23일 서울시의 온라인 시민제안 게시판에는 박원순 시장이 답변할 기준에 도달한 안건은 한 건도 없었다. 시작 두 달 만에 답변 정족수 20만 명을 넘긴 청원이 4건이나 됐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비교하면 초반 흥행몰이는 ‘참패’ 수준이다.

다른 지자체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성남시는 지난달부터 30일 이내 지지 5000회를 받으면 시장 혹은 관련 실·국장이 직접 답변하는 ‘행복소통청원’ 게시판을 온라인에 신설했지만,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게시물은 2729회에 불과하다. 전라남도가 8월 선보인 ‘도민청원’ 게시판에는 올라온 글이 8건에 불과했다. 여수시의 ‘열린 시민청원’에서 진행 중인 청원은 1건뿐이다. 포항시도 지금껏 정족수를 넘긴 청원은 없다.

운영하는 지자체들은 흥행 부진 이유로 ‘홍보 부족’을 꼽는다. 하지만 이면에는 시민들의 ‘실망’이 있다는 분석이다. 청원을 해도 청와대 게시판만큼의 주목을 못 받는 데다 지자체의 소극적인 태도에 기대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자체판 국민청원 게시판의 흥행 참패는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국민과 소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전시행정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시 시민제안 플랫폼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고 있는 ‘은평자원순환센터 백지화’ 요구는 8월 공감수 500개를 넘어 현재 3393개의 공감을 받았지만 박 시장이 답변하기 전 단계인 공론장은 열리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여론을 독점하는 것도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자체의 플랫폼에 시민 참여가 저조한 것은 청와대가 여론을 독점하고 있는 현실의 부작용”이라며 “청와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다룰 수 없는 것은 부처나 지자체로 민원이 향하도록 지침과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락근/이인혁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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