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청춘들의 유쾌한 복수와 따뜻한 위로

입력 2018-11-25 17:20  

리뷰 - 김의경 장편소설 '콜센터'


[ 은정진 기자 ] 올해 수림문학상을 받은 김의경(2014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의 장편소설 《콜센터》(광화문글방)는 감정노동의 끝자락에 있는 콜센터 직원으로 근무하는 젊은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힘은 ‘디테일(세밀함)’이다. 작가는 실제 피자회사 콜센터에서 반년간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소설의 주인공은 다섯 명이다. 어느 한 사람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연이고 나머지가 조연이 아닌, 모두가 소설을 끌고 간다. 대기업 취업에 연이어 고배를 마신 뒤 취업 준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콜센터로 온 강주리와 우용희, 한 명을 뽑는 데 1000명이 도전하는 지상파 아나운서를 꿈꾸는 최시현, 공무원 시험 공부를 위해 돈을 모으는 박형조, 음식점 창업을 위해 배달일부터 시작한 하동민이다. 고개를 잠시 돌리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젊은 군상들이다. 남들처럼 멀쩡하게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채 콜센터로 흘러들어온 이들은 불쾌한 진상 전화를 친절한 목소리로 받아내야 한다. 언젠가 이 힘든 과정에서 벗어나 진짜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란 작은 희망을 품고 견딘다.

소설은 이들의 이름을 소제목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구성됐다. 각 장엔 비루한 삶을 사는 이들끼리 느끼는 연민의 감정을,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질투 어린 감정들을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이들 모두 콜센터를 잠시 머물다 갈 환승역 같은 곳이라 믿고 있기에 가까운 듯 서로를 경계하고, 다가설 듯 사랑을 주지 않은 채 머뭇거린다.

진상 고객들은 배달원과 콜센터 상담사에게 쓰레기통에 휴지를 던지듯 화풀이한다. 하지만 콜센터 직원들은 세상 어디에 화풀이해야 할까 잠시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들을 세상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는 ‘고전적 신파’를 택하지 않는다. 현재 청춘들의 방식으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루에도 너덧 시간씩 전화를 걸며 1주일 내내 최시현을 괴롭히는 부산의 한 진상 고객을 함께 찾아가 똑같은 진상짓으로 복수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부산행은 잠시나마 저항할 수 있는 탈출구였다.

소설 속 다섯 청춘은 계속되는 취업 실패와 감당하기 벅찬 경제적 현실 앞에서도 사회와 제도권을 향해 소리쳐 불만을 표현하거나 반항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콜센터라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한줄기 끈을 쥐어잡고 서로를 조심스레 위로해준다. 김의경 작가만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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