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철수할 것, 北만큼 방위비 늘려라"…박정희 "미군 주둔해야 北 오판 막을 것"

입력 2018-11-25 18:20  

'백악관 외교기밀문서' 공개

미군 철수 문제로 격한 설전
1979년 최악의 한·미정상회담



[ 주용석 기자 ] 1979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한 정상회담 내용이 공개됐다. 제임스 퍼슨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연구원이 25일 연합뉴스에 공개한 백악관 외교 기밀문서에 따르면 두 정상은 이날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두고 격한 설전을 벌였다. 두 사람이 대립했던 이날 회담은 역대급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으로 꼽힌다.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카터 대통령은 “북한이 국민총생산(GNP)의 20%가량을 군사비에 쓰고 있다”며 한국에 방위비 확충을 압박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와 구조가 다르다”며 “우리가 GNP의 20%를 군사비에 쓰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맞섰다.

카터 대통령은 “한국이 북한과의 격차를 어떻게 좁힐 수 있느냐”며 “(격차를 좁히지 못하면) 미군은 영원히 철수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공격할 경우 한국 국민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면서도 “미군의 주둔이 전쟁을 억지하고 오판을 막는다”고 말했다.

카터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워싱턴DC로 돌아가자마자 네 가지 철수안을 준비했다. 첫 번째는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대로 진행하되 1981년 철군 문제를 재검토하는 안이었다. 두 번째는 두 개의 전투부대와 아이-호크 대대, 지원 병력을 1980년까지 철수하고 2사단의 남은 병력 철수는 1981년 재검토하는 안이었다. 세 번째는 지원 병력을 철수하되 전투부대 철수를 유보하고 남북한 군사력 균형 회복과 한반도 긴장 완화 진전에 따라 철군 규모를 조정하는 안, 네 번째는 철군을 연기하고 1981년 초에 철군 문제를 다시 검토하는 안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고심 끝에 철군의 기본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 대화와 한반도 긴장 완화의 진전에 따라 철군 문제를 조정하는 세 번째 안을 택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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