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보좌관 회의 3주째 취소…'뿔난' 문 대통령에 얼어붙은 靑

입력 2018-11-26 16:12   수정 2018-11-26 16:59

청와대는 지금



“대통령께서 수보(수석·보좌관)회의에서 보고 내용에 대해 문책을 한 이후 비서관들이 안건을 올리기 부담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논란 이후 다들 몸을 사리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임기 3년차를 앞둔 청와대가 얼어붙고 있다. 매주 월요일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청와대 수보회의는 26일에도 열리지 않았다. 3주 연속이다. 회의가 예정된 월요일에 불가피한 일정이 생길 경우 요일을 조정해서라도 진행했던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몸사리는 靑 참모들

회의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안건’을 올려야하는 비서관들이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0일 진행된 회의에서 김혜애 기후환경비서관이 미세먼지 대책을 보고하자 문 대통령은 “지난해와 뭐가 달라졌습니까”라고 물었다. 회의 참석자들은 대통령의 차가운 반응에 회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 했다. 청와대에서는 이를 두고 ‘보고 참사’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후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몇몇 장관들이 대통령께 쓴소리를 들었다”며 “준비가 안된 안건을 올리면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비서관들이 쉽게 안건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김 비서관의 직속상관인 사회수석이었던 김수현 정책실장은 보고 내용을 미리 챙기지 못한 점을 자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책실장이 된 후에도 안건을 올리지 않는 비서관들을 채근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준비가 안된 보고는 하지 않는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사실상 정책을 총괄하는 ‘원톱’ 자리에 오른 김 실장이 대통령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준비하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文정부 비판나선 與 “겉멋만 들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위기감이 높아진 청와대에선 연이어 “성과를 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 실장은 지난 23일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린 비공개 워크숍에서 “국민 앞에 성과를 보여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났지만, 경제성장동력 강화 및 소득양극화 해결에 대해서는 부족함이 많기에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언급했다.

청와대 참모들의 위기의식처럼 최근 문 대통령 호감도와 남북 평화 무드에 의존해 고공행진을 이어온 당·청 지지율은 두달 가까이 수직 하락하고 있다. 이날 발표된 한 여론조사에서도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지율 하락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책 마련해 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을 상대로 비판을 자제해오던 여당 내부에서도 강도 높은 쓴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더이상 감싸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민주당 중진의원은 “언제까지 대통령 개인기로 갈 것이냐”며 “어제 ‘KT 대란’도 그렇고 민주노총 문제도 그렇고 청와대나 내각에서 사안을 끝까지 챙겨서 마무리 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서대문 일대 통신이 마비됐던 지난 25일 임 실장이 ‘2022년에 경의선을 타고 베이징 올림픽 응원을 갈 수 있다’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린 것에 관련해선 “KT 대란이 났는데 비서실장은 트위터로 남북철도 유엔제제 완화 글을 올렸다”면서 “비서실장은 숨길 비(秘)를 쓰는 사람으로 눈에 안보이게 일을 해야하는데 너무 겉멋이 들었다”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의전비서관이 대통령이 ‘살인행위’로 규정한 음주운주 운전으로 적발된 것에 대한 여당 내 비판도 상당하다. 또 다른 중진의원은 “의전비서관이 청와대 앞에서 음주로 걸린 것은 명백한 공직기강 해이”라면서 “청와대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꼬집었다.

초선 의원들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선의원은 “민정수석이 경제문제에 대해 SNS에 거론할 게 아니라 본인이 맡고 있는 사법 개혁이 물건너 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경제부총리로 임명한 것은 명맥한 인사 실패”라면서 “경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달라질 것이란 메시지를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군기잡기 나선 임종석

‘공직 기강 해이’ 논란 등 청와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참모들을 이끄는 임 실장이 직접 군기 잡기에 나섰다. 그는 이날 전 청와대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우리는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있다”며 “이 순간 사소한 잘못이 역사의 과오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더 엄격한 자세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서실장이 직접 청와대 전 직원을 상대로 메시지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더군다나 청와대가 이 내용을 직접 언론에 공개한 것 역시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 안팎에서는 “집권 1,2년차 뿌려둔 성과를 내기 시작해야하는 집권 3차를 앞두고 그만큼 위기감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자신의 최측인 김 비서관의 음주운전을 더욱 단호하게 대처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실제 임 실장은 “청와대 구성원들을 독려해야 하는 저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대통령께 면목 없고, 무엇보다 국민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익숙함”이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옷깃을 여미자”고 했다.

박재원/김형호/배정철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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