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성수영 경제부 기자) “문재인 정부는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27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의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같이 답변하자 많은 기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피부에 와닿는 경제 상황과 지나치게 거리가 먼 현실 인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를 5단계로 나눌 때 최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2인 이상 가구)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7.0% 줄었습니다. 반면 상위 20%인 5분위 가계소득은 8.8% 늘어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죠. 특히 가계소득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근로소득만 놓고 보면 1분위는 1년 전보다 22.6%나 줄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감소폭이 가장 컸습니다. ‘불평등을 줄이겠다는 의지’는 강할지 몰라도, 결과는 확실히 정 반대에 가깝습니다.
반면 스티글리츠 교수가 비판한 미국의 소득분배 상황은 어떨까요.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지표는 실업률입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50년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한국 저소득층 가구의 근로소득 악화가 소득분배 악화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불평등은 트럼프 정부에서 감소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사실 스티글리츠 교수의 ‘헛발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13년 베네수엘라 은행이 주관한 강연에서 스티글리츠 교수는 “높은 인플레이션율이 꼭 해가 되는게 아니다”며 “휴고 차베스 대통령 덕분에 석유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던 카라카스의 빈민들이 성공적인 교육정책과 보건정책의 혜택을 받게 됐다”고 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경제 구조를 높이 평가한 것이죠. 그 후 베네수엘라는 1년새 물가가 6000% 오르면서 생필품도 제대로 사지 못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고, 국민들의 고통은 갈수록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분배정책의 신봉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J노믹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해 왔지요. 지난 5월 산업연구원에 기고한 글에서는 “적극적인 경제활동 개입으로 한국은 미국에 비해 훨씬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등 미사여구를 곁들여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칭찬했습니다. 당시 일부 언론은 기고문을 인용해 세계적인 석학인 스티글리츠 교수가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찬사를 보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정보경제학 분야의 거장인 그가 다른 국가의 경제 상황을 잘 모른다고 마냥 비판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경제 정책을 논하는 국가의 최근 경제 지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평소 정견에만 기대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건 확실히 아쉽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라는 그의 권위가 “세계적 석학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극찬했다”는 식으로 잘못 이용될 수 있으니까요. (끝) /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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