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두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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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필명도 이 무렵에 탄생했다. 소세키는 본명인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 대신에 시키가 지어준 ‘소세키(漱石)’를 평생 필명으로 썼다. 이 이름은 중국 《진서(晉書)》의 고사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괴짜들의 언어유희를 뜻한다. 시키의 본명은 쓰네노리(常規)였으나 결핵에 걸려 각혈한 뒤 ‘울며 피를 토하는 두견새’를 의미하는 ‘시키(子規)’를 필명으로 삼았다.
하이쿠 시인과 함께 나눈 영감
두 사람의 우정은 시키가 3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같은 하숙방을 쓰거나 여행을 함께 다니며 삶과 문학을 논했고, 서로의 작품을 발표할 지면도 마련했다. 시키는 자신의 필명을 따 창간한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두견새)’에 소세키의 출세작이자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실었다. 처음에는 한 회 분량의 단편으로 기획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계속 연재했다. 두 번째 작품인 《도련님》도 그 잡지에 실어 큰 인기를 얻었다.
둘이 떨어져 있을 땐 하이쿠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웠다. 시키가 고향인 마쓰야마로 요양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소세키와 함께 지낸 뒤 헤어질 때 이런 하이쿠를 남겼다.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두 개의 가을.’ 아픈 몸을 이끌고 떠나는 사람과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 사이의 ‘두 가을’을 대비한 시였다. 이에 소세키는 ‘가을바람에/ 살아서 서로 보는/ 그대하고 나’라는 하이쿠로 희망을 북돋웠다. ‘빌려 주어서/ 내겐 우산이 없는/ 비오는 봄날’이라는 시에는 ‘봄비 내리네/ 몸을 바짝 붙이는/ 하나의 우산’이라고 화답했다.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하이쿠를 많이 넣었다. 소설 속 구샤미 선생의 곰보 자국처럼 소세키 역시 천연두 자국이 있었는데 이를 하이쿠에 접목했다. ‘으스름달밤/ 얼굴과 안 어울리는/ 사랑을 하네.’
한·중 근대소설 태동의 지렛대
두 사람 모두 한문에 조예가 깊어 외래 문명에서 온 낱말을 새로운 조어로 만들어냈다. 소세키가 만든 한자 조어는 신진대사(新陳代謝), 반사(反射), 무의식(無意識), 가치(價値), 전력(電力) 등 수없이 많다. 서양의 ‘로망’을 한자어 ‘낭만(浪漫·일본어 발음 로만)’으로 번역한 것도 소세키다. 시키는 야구 용어를 일본식 한자로 옮겼다. 우리가 쓰는 ‘타자’ ‘주자’ 등은 모두 그의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일본 근대소설의 문을 연 소세키의 문학은 20세기 노벨상 수상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에게 이어졌다.
한국과 중국에도 큰 자극을 줬다. 이광수는 일본에서 공부하며 소세키에게 매료돼 귀국한 뒤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썼고, 중국의 루쉰도 유학 이후 《광인일기》라는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을 발표했다. 올해는 《무정》과 《광인일기》가 출간된 지 100주년인 해다.
소세키의 기일인 다음달 9일을 전후해 한·중·일 3국에서 그를 기리는 문학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한 세기 전 스산한 바람 속에 ‘두 개의 가을’을 공유했던 소세키와 시키의 우정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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