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너무 닮았다

입력 2018-12-06 17:10  

공병호의 파워독서

日 장기 불황시절에 일어났던 일들
다시 돌아보는 것은 타임머신 타는 셈

40년 전 붐볐던 日 외곽 뉴타운
지금은 많은 가게 문 닫아 한산

경기침체는 역설적으로 M&A 촉진
살아남은 기업들 글로벌 경쟁력 갖춰

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
타마키 타다시 지음 / 스몰빅인사이트



요행이 따를 수 있지만 이대로 가면 한국은 장기 침체를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 세상일을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장기 침체에 빠지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를 경제 주체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스몰빅인사이트)는 일본경제신문의 전직 언론인 타마키 타다시가 집필한 책이다. 일본의 장기불황이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하고 있다.

그 시기 일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그런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그리고 어떤 기회들이 생겼고 누가 그 기회를 잡았는가 등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한국이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 일어나고 있는 일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에 해당하는 부분일지 모른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일본이 한국 경제의 성장기에도 큰 도움을 주었던 것처럼 쇠퇴기에도 그럴 것이다.

일본 대도시 근교의 뉴타운은 40년 전엔 번잡한 지역이었다. 지금은 많은 가게가 폐점해 한산한 거리로 바뀌었다. 부동산 가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에겐 가슴에 전혀 와닿지 않는 광경이지만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한국의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라며 “상점에 존재하는 권리금 제도는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올랐을 때의 산물로 이것 역시 정상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그의 전망은 단호함 그 이상이다. 저자는 서울 집중도를 염두에 두면 일본 상황이 한국에서 전개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비슷한 점도 적지 않음을 경고한다. 한국은 전세보증금까지 합치면 2017년 기준으로 가계부채 규모가 2201조원에 이른다. 호주, 스위스와 더불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127%로 1등 그룹에 드는 국가다.

저성장 속에서도 한국 물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점을 저자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언급한다. 저자는 “자기 나라보다 1인당 GDP가 높은 나라에 골프 여행을 가서 싸다고 말하는 것은 스페인 사람과 한국 사람뿐”이라고 꼬집는다. 가격파괴 현상이 아직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는 유통업자의 파워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시장 상황이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변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정책 당국자들이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다.

장기적인 저성장이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좀 더 깊게 생각하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줄줄이 나온 것도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잃어버린 20년의 역설은 기업 사이의 인수합병(M&A)을 촉진시켰다. 이 와중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자랑하게 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일본 사례를 기반으로 거품을 제거하고 우리 자신의 의식과 지출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공병호 < 공병호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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