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들, 피감기관에 읍소도
[ 배정철 기자 ]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서 연말 국회의원의 관심이 정치 후원금에 쏠리고 있다. 올해 6월 지방선거가 치러져 지역구 의원 모금액 한도가 기존 1억5000만원의 두 배인 3억원으로 늘어난 데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실탄’ 확보를 위해서다. 그러나 국회 파행과 소모적인 정쟁으로 정치 혐오만 부추기면서 후원금 액수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고 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조차 경기 악화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후원금 모금에 비상이 걸렸다. 민주당 관계자는 “작년에는 후원금 상위 10명 중 7명을 민주당이 차지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만 올해는 성과가 저조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가장 먼저 후원금 3억원을 채웠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연말이 다가오지만 모금 한도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9일 “유튜브 광고 등을 통해 후원금을 모았던 지난해와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올해는 액수를 채우지 못해 여전히 모금 중”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대표인 홍영표 의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국회 파행을 일삼는 야당의 정치공세에도 정부 여당 원내대표는 ‘고군분투 중’”이라는 글을 올리는 등 후원을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 의원실도 후원자들을 정리해 둔 이른바 ‘후원금 데이터’를 통해 모금을 독려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경기가 악화되고 대통령 지지율마저 하락하면서 모금이 힘들어졌다”며 “다른 의원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부분 보수세가 강한 대구 지역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구 국회의원 정치 후원금은 조원진 대한애국당 의원이 1억여원으로 행정안전부 장관인 김부겸 의원(7078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을 탈당한 뒤 민주당에 복당한 홍의락 의원은 1500여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 등에게서 5000원부터 10만원까지 소액 후원금을 지원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후원금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유치원 비리 의혹을 폭로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30일 일찌감치 3억원 후원금 한도를 다 채웠다. 그러나 정치 경력이 짧은 초선 의원과 비례의원들은 직접 발품을 팔며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 등을 통해 후원금을 모으거나 연말정산 환급을 강조하면서 소액 후원을 호소하는 방식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정무위원회 등 피감기관이 많은 상임위가 주 ‘타깃’이다. 의원실 관계자는 “정치 후원금의 경우 10만원 한도 내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직원들에게 부탁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KT가 불법 후원금 문제로 경찰 수사까지 받은 전례가 있어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치 후원금은 의원들의 정치 활동을 도와주면서 동시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장치”라며 “소액 후원 등을 적극 활용해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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