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형규 기자 ]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경구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 변천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1962년 소득 100달러 최빈국이 1977년 1000달러, 1995년 1만달러, 2006년 2만달러를 넘어 올해 3만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밖에서는 유례없는 성공사례로 부러워하지만 안에서는 볼멘소리가 커져 간다. 주관적 만족도가 떨어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표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럴 만한 집단경험이 있었다. 1970년대 국가 지상목표였던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을 달성하면 다 잘사는 줄 알았지만 개개인의 삶은 하룻밤 자고 난 듯 별 차이가 없었다. 1만달러, 2만달러 때도 그랬다. 그런 ‘고지(高地)’에 올라선 뒤 어김없이 큰 시련을 겪은 트라우마도 빼놓을 수 없다. 1만달러 뒤 외환위기가, 2만달러 뒤 금융위기가 닥쳤다.
그렇다 보니 ‘1만→2만달러’에 11년, 다시 ‘2만→3만달러’에 12년이나 걸렸다. 독일 일본 등이 ‘2만→3만달러’를 평균 5년 만에 넘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더구나 올해 성장률은 2.7%(한국은행 전망)로 6년 만에 가장 낮고, 소득 5분위 배율은 5.52배(3분기)로 11년 만에 최대로 악화됐다. 지체된 성장은 성장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이럴 때 자주 들리는 말이 ‘행복은 국내총생산(GDP) 순이 아니다’는 것이다. 수출 위주의 성장드라이브는 한계에 달했고,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국가의 총체적 행복수준은 대개 GDP 순위에 수렴한다. 고소득 국가일수록 GDP로 측정되지는 않지만 개인의 자존감, 신뢰, 배려, 여가, 안전 등에서 월등히 우수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대로다.
한국인의 물질적 삶은 소득수준에 비례해 엄청나게 개선됐다. 흑백TV가 초대형 풀UHD로 바뀌고, 전기 통신 등 보편적 서비스를 산간·도서 벽지에서도 누린다. 한 해 2600만 명이 해외로 나간다. 그럼에도 ‘헬조선’이란 자조가 넘치는 것은 턱없이 뒤처진 ‘정치 지체(遲滯)’와 ‘신뢰자본의 부족’ 탓이 크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저성장 고착화와 만나게 된다. 일자리, 복지, 사회통합 등도 성장 없이 가능할까. 통일 이후 고전하던 독일이 벌떡 일어난 것도 성장의 힘이었다.
이탈리아는 13년 전 3만달러 돌파 뒤 여태 제자리이고, 금융위기 당시 한국보다 소득이 1만달러 높던 스페인은 2만달러대로 주저앉았다. 3만달러 시대에 걸맞은 ‘아비투스(habitus·사회 환경에 의해 형성된 행동양식)’를 갖추지 못하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3년께 소득 4만달러를 예측했다. 벤처 1세대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3만달러까지는 ‘효율’이, 그 이후는 ‘혁신’이 성장을 주도한다”고 지적했다. 미래는 우리 하기에 달렸다.
oh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