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 이지현 기자 ]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에 없던 기술, 서비스 등 헬스케어산업의 지각이 변동하고 있다. 헬스케어 발전전략을 통해 국민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4차 산업혁명 기반 헬스케어 발전전략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헬스케어 분야를 접목해 바이오헬스산업 성장 속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날 복지부는 2021년까지 일반인 암생존자 등 300명의 건강·의료·유전체 데이터를 구축해 분석하는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데이터 표준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복지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227억원을 투입해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도 구축하기로 했다. 신약 개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연구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의사과학자 양성, 병원 실험실 개방 등 헬스케어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돼온 내용이 이날 발전전략에 담겼다.
그러나 복지부 발표를 두고 벌써부터 ‘진단은 맞지만 대책은 모자라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문제의 해법이 빠졌기 때문이다. 이날 복지부가 발표한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사업은 시범사업에 불과하다. 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도 이미 제각각 의료기관에 쌓여 있는 빅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환자가 참여한다는 점에서 기존 사업과 다르다. 하지만 사업화를 장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헬스케어업계는 의료 빅데이터 규제를 풀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헬스케어특별위원회 내부에서도 여러 차례 “의료정보 보호 및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국내 의료기기·건강관리 회사가 개발한 데이터 저장·전송 기술이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제품을 팔지 못하니 해외시장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국내 시장이 어려우면 중국에라도 진출할 수 있도록 중국과의 빅데이터 기술 표준 협력사업을 서둘러 달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 일본 중국 등은 정부 차원에서 헬스케어 빅데이터사업을 차세대 사업으로 정해 육성하고 있다. 미국이 2015년 신미국혁신전략에 데이터산업을 포함하면서 국가 간 빅데이터 전쟁이 시작됐다. 이들 국가에서는 의료 빅데이터가 AI, 정밀의료산업을 키우는 씨앗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은 다르다. 어떤 의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빅데이터 활용을 늘리기 위해 행정안전부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이 관련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지만 정작 의료법을 개정하겠다는 내용은 빠졌다.
복지부는 헬스케어 발전전략을 통해 선진국 대비 국내 기술 수준을 2016년 77.5%에서 2022년 80%로 올리겠다고 했다. 꼭 실현해야 할 청사진이지만 규제 개선 없이는 요원한 목표다.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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