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석의 워싱턴인사이드] 미국, 1년2개월만에 '북한 인권' 정조준

입력 2018-12-11 08:48   수정 2018-12-11 11:47


미국이 1년2개월만에 처음이자, 지난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으로 북한 정권의 핵심 인사를 인권 탄압 문제로 제재했다. 미·북 고위급 협상이 무산되는 등 북한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북한이 반발하는 인권 문제를 정조준한 것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 국무부는 10일(현지시간) 연방 상·하원에 제출한 북한 인권유린 관련 보고서에서 북한 정권의 사실상 2인자로 평가받는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정경택 국가보위상, 박광호 노동당 부위원장의 이름을 올렸다. 미 재무부는 이 보고서에 근거해 이들을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재무부 제재를 받게되면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인,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국무부와 재무부에 따르면 최룡해 부위원장은 검열기관인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맡고 있다. 정경택 국가보위상은 보위성(한국의 국정원에 해당)이 저지른 검열 활동과 인권 유린을 감독하은 역할을 맡고 있다. 미 국무부는 “그는 정치범 수용소의 고문, 굶기기, 강제노동, 성폭행 같은 심각한 인권 유린을 지시하는데 관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광호 부위원장은 사상의 순수성 유지와 총괄적인 검열활동 등을 하는 선전선동부를 책임지고 있다.

이번 제재는 2016년 7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개인 15명과 기관 8곳, 작년 1월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작년 10월 정영수 노동상 등에 이은 북한 인권 유린 관련 4번째 제재다. 이로써 미국의 북한 인권 관련 제재 대상은 개인 32명, 기관 13곳으로 늘어났다.

주목되는건 ‘제재 시점’ 때문이다. 이번 제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6년 2월 서명한 대북제재강화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에 따라 미 국무장관은 180일마다 북한 인권실태 관련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직전 보고서는 작년 10월말 나왔다. 북핵 위협이 고조됐을 때다. 이번 보고서가 나오기까지는 1년2개월 가까이 걸렸다. 그 사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으로 한동안 미·북간 ‘화해 무드’가 조성됐지만 최근 상황이 다시 꼬이고 있다. 지난달 8일로 예정됐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고위급 회담은 무산됐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은 감감 무소식이다. 미국 내에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제재가 단순히 인권 문제를 넘어 미국의 대북 압박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이번 제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미국이 추진하던 인권 토의가 무산된 직후 이뤄진 점도 눈길을 끈다. 미국은 당초 이날 ‘세계인권선언의 날’을 맞아 북한 인권 토의를 위한 안보리 회의 개최를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반서방 성향 안보리 이사국의 반대로 회의 개최에 필요한 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하자 최근 회의 개최 요청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4년 연속 이어져 오던 안보리에서의 북한 인권 토의는 5년 만에 무산됐다.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오늘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심각한 인권 유린과 검열에 책임있는 3명을 제재대상에 추가했다”며 “북한의 인권 유린은 세계 최악”이라고 비판했다.

북한의 반응도 주목된다.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문을 닫은건 아니라는 분석이 많지만, 북한이 미국의 이날 미국의 조치에 강하게 반발할 경우 북한 비핵화 협상이 더 꼬일 수도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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