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광엽 기자 ]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첫해인 2011년. LG전자 등 많은 상장사가 환율 변동으로 생긴 ‘외환 관련 이익’을 ‘영업이익’으로 잡은 낯선 재무제표를 내놨다. “유럽 IFRS 모범회사들이 하는 대로 했다”는 설명이었다.
반면 삼성전자 등 이전 회계기준(K-GAAP)대로 ‘영업외 이익’으로 잡은 곳도 많았다. “선진 회계라더니 실적 비교도 안 되느냐”는 불만이 쇄도했고,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영업외’로 교통정리했다. 논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지만, 외국에선 여전히 많은 기업이 외환 손익을 ‘영업’으로 처리한다. “기업이 하는 일은 전부 영업”이라며 영업이익을 표시하지 않는 기업도 꽤 된다.
하나의 거래에 두 개 이상의 회계처리가 가능한 게 IFRS의 특징이다. 그렇다고 IFRS가 ‘제 멋대로 회계’는 아니다. ‘원칙 중심’을 슬로건으로 공정한 가치 평가를 추구한다. 회사가 재량권을 발휘해 “경제적 실질을 잘 반영하라”는 의미다. ‘규정 중심’ K-GAAP가 회계처리 방식을 세세하게 명문화한 것과 대조적이다.
증선위 의욕이 키운 삼바사태
증권선물위원회의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 판정’이 나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논란은 확산되는 모습이다. 증선위는 삼바의 합작파트너인 미국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공동 지배’했다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90%대 지분율에 기초해 ‘단독 지배’로 회계처리한 행위를 ‘고의 분식’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11일 거래 재개된 삼바는 하루 동안 18% 가까이 급등했다. 증선위의 ‘철퇴’가 무색해진 셈이다.
혼란의 근저에는 IFRS에 대한 이해도와 수용도의 극심한 차이가 자리한다. 금융당국은 2년 가까이 조사하면서 “단독 지배든 공동 지배든 삼바가 선택할 수 있다”(금융감독원) “종속회사인지 관계회사인지 알 수 없다”(금융위원회)는 입장을 견지했다. ‘원칙 중심’이라는 IFRS 속성을 의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증선위는 ‘둘 모두 맞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라며 선택을 압박했고, ‘공동 지배’ 의견을 이끌어냈다. 바이오젠의 바이오에피스 지분율은 10% 선에 불과하지만, 잠재적 의결권(콜옵션)과 일부 영업권을 보유한 점이 근거로 제시됐다. 참여연대가 꼭 2년 전 삼바를 최초로 고발하면서 제기한 ‘단독 지배임을 확인해 달라’던 취지와는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꼴이다.
'IFRS 포비아' 확산 막아야
‘삼바 사태’는 증선위에도 절체절명의 승부다. 주식교환의 실익이 없는 ‘외가격 옵션’이나 제한된 소수주주 영업권은 ‘실질 지배력’이 아니라는 해석이 적지 않아서다. 증선위 결론에서 모순점도 꽤 보인다. “2015년에는 확실히 공동 지배로 바뀐 것 같다”면서도 지분법 회계로 변경한 결정을 ‘비정상적’이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스모킹 건’으로 지목한 ‘삼바 내부 문건’도 검증대에 올랐다. 해당 문건에는 ‘콜옵션 행사 시 (바이오젠의) 동등한 지배력 보유가 확실해진다’는 등 삼바 측 주장에 부합하는 문구가 많다. 일부 증선위원은 “합작 투자는 공통 투자이고 그런 경우는 ‘공동 지배’로 볼 여지가 크다”는 발언으로 비전문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K-GAAP와 너무 다른 IFRS를 새로 공부 중인데, 이해 안 될 때가 많다”고 실토하는 회계학 교수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국과 일본이 10년 넘게 IFRS 도입을 결단하지 못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삼바의 부실회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콜옵션’ 공시를 2년간 누락하는 등의 행태는 명백한 잘못이다. 그러나 금융당국과 기업이 회계 재량권 행사 범위 결정을 비전문가인 법관에게 일임하는 식의 해법은 ‘IFRS 포비아’를 확산시킬 뿐이다. “이럴 거면 규정 중심 회계로 돌아가자”는 말이 더 나와서는 안 된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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