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IT과학부 기자) “죄송하지만 곧 비행기가 이륙해서요. 한국 도착해서 처리하겠습니다.”
직장 상사에게 이런 말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초연결사회라는 요즘 세상에도 인터넷이 닿지 않는 ‘마지막 청정구역’으로 남아있던 비행기 안에 ‘빵빵 터지는’ 인터넷을 보급하는 항공사가 늘고 있다. 미주와 중동 지역에서 먼저 활성화된 이 서비스가 국내 항공업계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운행 중인 기종에 장비를 추가하거나, 전용설비를 갖춘 신형 기종을 들여오는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대한항공 측은 “구체적 도입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항공업계 추세를 감안하면 필요한 서비스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에어버스의 최신 기종 A350 넉 대를 도입하면서 기내 와이파이를 선보였다. 요금은 1시간에 11.95달러(약 1만3000원), 착륙 전까지 무제한 쓰려면 21.95달러(약 2만5000원)다. 이용 가능 노선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기내 와이파이는 국내에선 친숙하지 않지만 해외에선 이미 보편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동 에미레이트항공은 거의 모든 항공기에, 델타항공과 아메리칸에어 등 미국 항공사들은 전체 비행기의 약 80%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핀란드 핀에어도 최근 유럽 내 노선에 무료 인터넷을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고 내년 하반기 모든 항공기에 도입하기로 했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마켓에 따르면 세계 기내 와이파이 시장규모는 지난해 39억9770만달러(약 4조5000억원)에서 2025년 133억1960만달러(약 15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16.5%를 기록하는 ‘뜨는 시장’인 셈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대중화하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내 와이파이를 구현하는 기술은 지상의 기지국 또는 우주의 인공위성을 활용하는 두 종류로 나뉜다. 김포~제주 같은 단거리 노선은 항로 상의 지상 기지국만으로 와이파이 연결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다를 건너는 국제 장거리 노선에는 지정궤도 위성을 활용한다. 비행기 위쪽에 붙은 안테나가 위성 신호를 받아 와이파이 신호로 바꾼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기술 수준상 단거리든 장거리든 충분히 가능한 서비스이고, 투자 결정의 문제”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과 느린 속도는 한계로 지적된다. 미국 항공사들도 국내선 기준 평균 13달러 정도를 받고 있다. 내려받기 속도는 10Mbps를 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검색, 이메일, 메신저 등은 가능해도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고화질 동영상을 즐기긴 힘든 수준이다.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설리번은 와이파이가 터지는 비행기가 2015년 333대에서 2025년 5193대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승객들 사이에서는 “지루한 장거리 비행 중 인터넷 서핑이 큰 도움이 된다”는 반응과 “쉬지 못하고 업무에 매달리게 만든다”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기내 와이파이는 항공사와 통신사, 그리고 항공기에 장비를 공급·운영하는 솔루션업체가 세 축을 이뤄 돌아간다. 미국의 고고와 파나소닉은 이 솔루션 사업에 집중해 세계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다.
KT 계열의 위성통신업체 KT SAT은 국내 대형 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에 기내 와이파이 구축 사업을 꾸준히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이 회사 관계자는 “아시아 전역에서 성장 전망이 밝은 시장이지만 한국에 관련 솔루션을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한 곳도 없다”며 “대형 항공사와 통신사는 있으나 전문 기술업체가 없어 서비스 확산이 더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끝) /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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