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본격화
1600억 단기차입, 자산 2조 넘어
감사委 설치로 감사 선출 막아
[ 김익환 기자 ] ▶마켓인사이트 12월12일 오후 4시10분
한진그룹이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 9%를 사들인 행동주의 펀드 케이씨지아이(KCGI)로부터 경영권 방어에 본격 나섰다. 차입을 통해 자산을 불리는 방식으로 KCGI 측의 감사 선임 시도를 무력화하기로 했다. KCGI 측은 “지배구조 개선에 역행하는 꼼수”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한진그룹 측은 “더 선진화된 감사 제도를 갖추게 된다”고 반박하면서 양측 간 공방이 가열될 전망이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진칼은 금융회사들로부터 1600억원을 단기차입할 계획이라고 지난 5일 공시했다. 차입이 완료되면 한진칼의 자산은 1조9134억원에서 2조734억원으로 불어난다. 현행 상법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은 상근 감사를 선임하는 대신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통상 사외이사 중에서 선임한다.
이렇게 되면 감사 선임에 적용되는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이 크게 완화된다. 상근감사 선임 시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모두 3%로 묶이는 데 반해 사외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주주 1인당 3%로 의결권이 제한된다. 17.85%의 지분을 보유한 조양호 회장의 의결권은 3%로 줄어들지만 약 2.3%씩 보유하고 있는 조원태, 조현아, 조현민 등 조 회장의 세 자녀는 지분율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지분이 3%에서 17.13%로 늘어나게 된다.
그동안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KCGI가 내년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감사 자리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한진칼이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외이사 중 감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KCGI의 감사 선임을 통한 이사회 진입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KCGI측이 과도한 차입금 조달을 이유로 조 회장 등을 상대로 배임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진그룹 측은 단기차입은 경영권 방어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이 이달 700억원, 내년 2월과 3월에 각각 400억원, 750억원에 달해 상환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사회 내에 감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은 상근감사를 선임하는 것에 비해 내부 통제 및 경영 투명성 제고에 더 적합한 선진화된 제도”라고 주장했다.
강성부 KCGI 대표는 이날 일본 모처에서 모리타 나오유키 전 일본항공(JAL) 부사장과 만났다. 모리타 부사장은 2010년 1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과 함께 당시 경영 위기를 겪던 JAL의 회생을 이끈 인물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강 대표가 항공업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모리타 부사장을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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