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2기 경제팀의 '脫갈라파고스'를 기대한다

입력 2018-12-12 18:12  

'소득주도성장'은 임상시험 건너뛴 신약
부작용 나타나면 정책 방향 수정해야

오상헌 산업부 차장



[ 오상헌 기자 ]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 A씨를 얼마 전 만났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영양제 주사 한번 놔준 것에 불과하다”고 고언한 날이었다. 장 교수의 발언이 대화 테이블에 오르자 A씨는 기다렸다는 듯 열변을 토해냈다.

“사업하는 사람들에겐 정부 정책이 영양제가 아니라 독극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임상시험도 거치지 않은 신약 후보물질을 치료제라며 주사하는 격이잖아요. 소득주도성장이 대표적이에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약으로 치면 신약인데도 꼼꼼한 효과분석 없이 기업과 자영업자를 ‘마루타’로 삼아 밀어붙인 거죠.”

‘임상시험’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임상시험은 신약 개발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는 핵심 프로세스다. 통상 1~3상으로 이뤄진다. 소수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확인한 뒤(1상),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검증하고(2상), 마지막으로 다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동시에 평가한다(3상). 단계별로 기준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못한다.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거나 약효가 신통치 않으면 곧바로 쓰레기통행(行)이다.

찬찬히 따져보면 임상시험 프로세스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상식에 기반한 일처리 방법’이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시행할 때도 이런 상식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했다. 그랬다면 △정책 대상을 소수에서 다수로 단계별로 넓혀나갔을 것이고 △1상 시험 대상이 ‘건강한 일반인’인 것처럼 경제 체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했을 것이며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부작용이 큰 것으로 확인되면 곧바로 정책 방향을 수정했을 것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에 앞서 경제계가 간청한 인상속도 조절 및 지역별·업종별 차등 요청은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묻혔다. 뒤늦게 속도 조절론이 나오고는 있지만, 올 들어 16.4% 오른 최저임금이 내년 1월1일 또다시 10.9% 추가 인상되는 것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마찬가지다. “평균 주 52시간 이내에서 6개월~1년간 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 역시 묵살됐다.

A씨는 “20일 뒤 맞이할 새해가 두렵다”고 했다. 내년 국내외 경영여건이 올해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최저임금 추가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본격 시행이 더해지면 회사 살림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년에는 또 어떤 ‘갈라파고스 규제’(글로벌 트렌드와 배치된 한국에만 있는 규제)가 ‘임상시험’ 없이 튀어나올지 불안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제발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 기업들이 사력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훼방만 놓지 말아달라”는 하소연과 함께.

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자영업자와 기업인을 가장 많이 만나는 부총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반가운 일이다. 1기 경제팀이 정밀한 검증 없이 밀어붙인 정책으로 코너에 몰린 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갈라파고스 규제들을 차례차례 없애는 것. 이 두 가지가 2기 경제팀의 키워드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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