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S 검사와 암 위험 예측
유전자 돌연변이 찾으려면…
어떤 유전자 분석할지 따라
패널구성 달라…병원 살펴봐야
앤젤리나 졸리, 검사 후 유방 절제
BRCA 유방암 유전자 손상되면 암 막아주는 역할 못해 발병률↑
부모 중 한명 돌연변이 있다면 자식에 유전될 확률이 '절반'
암 유발 유전자 찾아 '표적 치료'
수술 대신 항암제로 위험 낮춰
[ 이지현 기자 ] 유전자 돌연변이 등을 분석해 맞춤형 치료를 하는 암 환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내에서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NGS)이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된 뒤 이 검사를 도입한 의료기관은 22곳에서 52곳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만 1600여 명이 NGS 검사를 받았다. NGS를 활용하면 모든 인간 유전체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다. 진단·치료에 드는 시간을 줄이고 검사 비용도 아낄 수 있다.
1990년에는 30억 쌍의 염기로 이뤄진 인간 유전체를 해독하는 데 13년이 걸렸다. NGS를 통해 지금은 3일이면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맞춤형 치료약제를 선택하고 암 위험을 예측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NGS 검사와 대표적 암 위험 유전자 돌연변이인 BRCA에 대해 알아봤다.
50만원 정도면 암 돌연변이 분석
NGS 검사는 적은 양의 검체로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암, 유전질환 등을 진단하기 위해 NGS 검사를 받을 땐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환자는 전체 진료비의 50%인 50만원 정도를 부담하면 된다.
기존의 유전자 검사는 환자의 검체에서 하나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를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NGS 검사는 한 번에 수백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낼 수 있다.
이때 어떤 유전자를 분석할지 등을 결정해 패널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널에 따라 찾아낼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패널에 포함하는 유전자 종류는 의료기관 및 검사기관에 따라 다르다. 국내에서는 서울아산병원이 2012년 미국 다나파버암센터와 함께 한국형 온코맵과 온코패널을 개발해 치료에 적용했다. 이 패널은 국내 NGS검사 시스템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길병원도 한국인에게 맞는 190개 유전자를 분석하는 패널을 개발해 가동하고 있다.
김혜련 중앙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인간은 30억 개의 염기서열과 약 3만~4만 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며 “이 유전자가 여러 질병의 진단, 예후,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하나의 질환에도 여러 가지 유전자가 관련이 있어 여러 유전자를 동시에 검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암 위험 높이는 BRCA 돌연변이
NGS를 통해 유전체를 쉽게 분석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한계는 있다. 암을 일으킨다고 밝혀진 유전자 돌연변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각각의 유전자가 어떤 질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원인이 밝혀진 일부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찾아냈다 해도 이에 맞는 치료제가 없거나 치료제가 있어도 쓸 수 없는 환자가 많다. 맞춤치료를 할 수 있는 표적항암제, 면역항암제 등의 값이 비싸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인과관계가 밝혀진 유전자도 있다. 미국 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절제 수술을 받으면서 유명해진 BRCA 유전자 돌연변이다. BRCA는 유방암 유전자(breast cancer gene)의 약자다. BRCA1, BRCA2 두 개의 유전자를 의미한다. BRCA 유전자는 암 및 종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유전자다. 암이 생기지 않도록 보호하는 종양억제 유전자로 알려져 있지만 유전자 DNA가 손상돼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암을 막아주는 역할을 제대로 못해 암이 생기기 쉽다.
유방암과 난소암은 대부분 후천적 원인으로 생긴다. 전체 환자의 5~10% 정도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 여성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56~87%에 이른다. 난소암 발생 확률은 27~44%다.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결과에 따르면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으면 70세 이전에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66~72% 정도다. 난소암은 70세까지 암 발생률이 16~44% 정도로 높다. BRCA2 유전자 변이는 유방암과 난소암 외에 췌장암, 전립선암, 담낭암, 담도암, 대장암, 위암 등 다양한 암의 위험도를 높인다.
가족 중 유방암 있으면 검사 받아봐야
부모 중 한 명이라도 BRCA 돌연변이가 있으면 자식에게 유전될 확률이 50%다. 가족, 친척(고모, 삼촌, 이모, 조카) 중 유방암 또는 난소암 진단을 받았거나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는 판정을 받으면 가족이 모두 유전자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김 교수는 “유방암 및 난소암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나 가족력이 없지만 본인이 40세 이전에 진단된 환자라면 돌연변이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혈액 속 DNA 검사를 통해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되면 6개월마다 유방 검진을 받아야 한다. 매년 유방 촬영, 초음파검사 등을 받고 한 해 두 번 정도 산부인과를 찾아 질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생과 진행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치료도 한다. 미국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BRCA1, BRCA2 유전자 돌연변이 환자를 대상으로 BRCA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한 항암제 린파자(성분명 올라파립)를 복용하게 했더니 유방암 진행 위험이 42% 낮아졌다. 지난해에는 BRCA 유전자 돌연변이 난소암 환자에게 루브라카(루카파립)를 투여했더니 질병 진행 위험이 65% 정도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유방을 잘라내는 것 대신 표적항암제 등을 복용해 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김희준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이전에는 유방암과 난소암 항암제를 선택할 때 환자 개별적으로 치료 효과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어 비슷한 암종에 시험해보고 경험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며 “NGS 검사를 바탕으로 적절한 유전자 표적치료를 시행하게 돼 항암치료 효과를 높이고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NGS 기반 맞춤 정밀의료를 도입하면서 기존 치료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치료가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bluesky@hankyung.com
도움말=김혜련 중앙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김희준 중앙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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