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종시 리스크

입력 2018-12-16 17:43  

백광엽 논설위원


[ 백광엽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경제부처들이 과천청사로 이전한 1986년에 공직을 시작한 ‘과천둥이’다. 행정고시 ‘재경직 차석’으로 경제기획원에서 출발한 엘리트 관료에게 과천은 성공의 이미지다. 입주 첫 해 ‘3저 호황’이 시작됐고, 이후 수년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했다. 과천 터가 호황을 불렀다는 풍수적 해석이 나올 정도였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주 취임식을 한 홍 부총리가 첫 간부회의에서 ‘세종시 리스크’를 언급한 것은 그런 복잡한 심경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는 “간부들이 서울을 오가며 시간을 허비하다 사무관들의 능력을 키워주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간부들에게 “되도록 세종에 머물며 후배들을 챙겨달라”고 부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3주 만에 세종 사무실에 얼굴을 비치거나, KTX로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며 ‘셔틀 근무’에 시달리는 국·과장이 부지기수다. 상사가 없으니 사무관 이하 직원들에게는 매일이 ‘무두절’(無頭節·윗사람이 없는 날)이나 다름없다. ‘길 과장’ ‘도로 국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지도 오래다.

‘세종특별자치시’가 공식 출범한 지 6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리스크’라는 우려의 시선이 여전하다. 중앙 행정기관 40개, 국책연구기관 15개가 이전해 보기에는 그럴듯하다. 인구도 올 5월 30만 명을 돌파했다. 해마다 3만~5만명씩 늘고 있으니 나름의 성과다.

그러나 목표였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기여하고 있느냐는 점에서는 회의적이다. 증가한 인구의 20% 정도만 서울·수도권에서 유입되고, 절반 이상은 대전·충남·충북에서 이주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 분산보다, 충청권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인재도 떠나고 있다. 대표적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수석이코노미스트’를 구하지 못할 정도다.

가장 큰 걱정은 ‘정책 품질’의 저하다. 세종시 공무원 74%가 ‘이전 후 정책 품질이 떨어졌다’고 인정하고 있다. 업계와의 소통이 줄었다는 답은 80%에 달한다. 현장에 기반한 ‘현장지(知)’가 아닌 교조적 ‘이론지’에 매몰되는 나라는 퇴행이 불가피하다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고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우수한 관료조직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애국심과 전문성으로 무장한 공무원이 끌고, 민간이 밀어온 결과가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이제 공무원들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졌고, 민간의 신뢰는 예전같지 않다. 세종시 관료들에 대한 뉴스가 ‘아파트 대박’이나 ‘미혼자 미팅’으로 바뀐 듯한 이 상황은 분명 이질적이다. 효율은 추락 중인데 공무원과 지자체만 몸집을 키워가는 ‘역설’에 대해 심각하게 돌아볼 시점이다.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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