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는 2.3%까지 낮춰…수출마저 부진 우려
[ 성수영 기자 ] “내년에는 더 강한 외풍이, 더 지독한 가뭄이 올 것이다.”(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내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2.7~2.8%)을 밑돌 정도로 고꾸라질 것이란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외 기관들이 전망하는 내년 한국 성장률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는 2.3~2.6%다. 올해(2.7%)와 비교하면 완만한 하강이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대내외 리스크로 상황이 악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성장률 줄줄이 하향 조정
정부는 지난 7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3.0%에서 2.9%로, 내년 목표치는 2.9%에서 2.8%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3%대 성장률’이 다시 깨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8%로, 국제통화기금(IMF)은 2.9%에서 2.6%로 낮췄다.
민간 연구소의 평가는 더욱 냉혹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성장률을 2.6%로, LG경제연구원은 2.5%로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은 ‘2019년 국내외 경제전망’에서 “국내 경기가 세계 경기보다 뚜렷하게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고용 증가세가 거의 멈추고 있으며 경기는 하향 흐름으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경기 비관론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0월 말 경제 전문가 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5% 안팎으로 예상했다. 당초 전망했던 2.7%에서 두 차례에 걸쳐 내린 수치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한국의 내년 전망치를 당초 2.9%에서 2.3%로 확 낮췄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충격을 한국이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역분쟁에다 정책요인까지
각 기관은 내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미·중 무역분쟁을 꼽았다. 2년 넘게 호황을 누려온 반도체를 비롯해 자동차, 조선, 화학 등 주력 수출기업의 이익 증가세가 꺾일 것으로 진단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반도체 등 한국 기업의 대중 중간재 수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나마 경제를 떠받쳐온 수출이 무너지면 내수 침체 역시 가속화할 수 있다. 내수는 지금도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2분기 성장률만 보면 내수가 0.7% 감소하는 동안 순수출(수출에서 수입을 뺀 금액)이 1.3% 늘어 겨우 0.6%를 맞출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수출을 뺀 내수로 한정해서 보면 경제가 ‘역성장’했다는 얘기다. 순수출이 늘어난 것도 내수 불황 때문에 수입이 크게 감소해 생긴 일종의 ‘착시 현상’에 가깝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데 이어 내년에는 또다시 10.9% 오른다. 주 52시간 근로제도 본격 시행된다. 이 같은 ‘정책 리스크’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출발점은 근로자 임금을 높여 가처분 소득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소비 확대→내수 활성화→기업 투자 및 고용 확대→경제 성장→임금 상승→가계소득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가시화하고 있다. 노동비용 증가로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고, 실업이 늘면서 내수가 꽁꽁 얼어붙었다. 소득주도성장의 악순환이 굳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 “규제 개혁해야 혁신성장”
전문가들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기업 환경 개선이 급선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하강 징후가 뚜렷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까지 인상(1.50%→1.75%)해 기업 악재가 겹쳤다”며 “규제 혁파에 박차를 가해 다른 쪽에서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도 “투자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혁신성장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 1년여간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 늪에서 탈출하려면 분배보다 생산성 향상을 꾀해야 한다”며 “소득주도성장은 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NIE 포인트
내년 한국 경제에 닥칠 주요 리스크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자.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명분과 달리 현실에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를 토론해보자. 잠재성장률 명목성장률 등 성장지표와 관련한 용어도 정리해보자.
성수영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