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 10년물과 2년물 금리차 10bp…5년물은 이미 역전
트럼프 재정정책 효과 축소…미 경제 올 4분기가 고점 진단
Fed 금리인상 속도 조절론 부상…韓 '금리 딜레마'도 가중
장보형 <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
미국 금융시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을 지속하는 가운데, 정작 장기금리가 따라 오르지 못하면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를 웃돌고 있는 것이다. 이미 5년물 국채금리와 2년물 및 3년물 국채금리 간에 금리 역전이 나타났다. 장·단기 금리의 대표적 척도인 10년물과 2년물 또는 10년물과 3개월물 간 금리는 아직 역전되지 않았지만 각각 10bp(1bp=0.01%포인트), 40bp 수준까지 줄어들면서 역전이 임박한 모습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이 관심을 끄는 것은 과거 경험상 경기침체의 신호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10년물과 2년물 또는 3개월물 간 금리가 역전된 경우, 1960년대 말 이후 거의 반세기에 걸쳐 나타난 미국의 경기침체 7번 모두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시차는 짧게는 1분기, 길게는 8분기 정도로 나타났다. 그런 만큼 지금의 장·단기 금리 역전 움직임은 장기간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던 미국 경제 향방에 불길한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미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6월부터 지금까지 114개월째 확장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1991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120개월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긴 확장 국면이다. 내년 7월이면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할지도 모른다. 동시에 이 같은 경기회복세의 장기화로 인해 점차 미국 경제의 노쇠화, 즉 올해 4분기를 끝으로 미국 경제가 고점을 통과해 이제 둔화 경로에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여기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정정책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 3% 안팎으로 기대되는 미국 경제의 놀라운 성장률은 트럼프의 대규모 감세와 재정지출 등에 따른 영향이 크다. 그 효과는 무려 1%포인트 수준, 즉 경제성장률의 3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그 영향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고, 후년에는 아예 마이너스 효과로 반전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민주당의 하원 장악으로 재정 운용의 교착상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뭔가 새로운 동력원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큼 미국 성장률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금리역전 2년 안에 경기침체
물론 미국 경제가 당장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재정 효력의 약화를 고려하더라도 내년 미국 경제는 2%대 초·중반의 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후년이다. 뉴욕연방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지금의 장·단기 금리차 축소(10년물과 3개월물 기준)로는 향후 12개월 뒤 미국의 경기침체 확률이 20%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다수 전문가는 2020년에 가서야 경기가 침체할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경기둔화만으로 그동안 미국 경제에 누적된 불균형의 위험은 커질 수 있다. 사실 미국 경제 이상으로 미국 증시도 10여 년에 걸친 상승세를 구가하면서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이어갔다. 경기회복에다 기업 실적 호조가 맞물린 덕분이다. 올해 트럼프가 시행한 해외수익환류세제 지원조치 역시 그 수익을 자사주 환매수 등에 돌리면서 주가 상승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추세는 기업 실적에 대한 의존도가 큰 상업용 부동산과 회사채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해 Fed는 최근 처음 발간한 반기별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미국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이 크지 않다고 평가하면서도, 주가와 상업용 부동산 등 일부 자산가격의 버블 징후는 물론 기업 부문의 부채 리스크에 주의할 것을 촉구했다. 기업 부채 중에서도 특히 고수익 채권과 레버리지 대출 등 위험도가 높은 부채가 계속해서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수익 대비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의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까지 경기가 호조세를 보이고, 기업 실적이 순항하고 있을 때는 이런 취약성들이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앞으로 경기가 둔화하기 시작하고 기업 실적 향방에도 우려의 시선이 많아지게 되면 사정이 급변할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주가 조정이 심상찮은 것은 그 탓이다. 주로 가계부채 문제에 시달려왔던 금융위기 10년의 유산이 이제 기업부채 위험을 중심으로 탈바꿈하면서 미국 경제의 정상화를 저해하는 것은 물론 잠재 위기의 가능성을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Fed는 경제 회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단계적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보유자산 축소와 금리 인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벌써 여덟 차례나 금리를 인상한 것은 물론 만기 도래 채권 위주이긴 하지만 보유자산도 2017년 10월부터 5000억달러가량 줄여왔다.
美금리 인상 멈추면 부채 위험 커져
하지만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 등 미국의 경기침체 혹은 둔화 압력이 부각되면서 금리 인상 속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지금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대부분 Fed의 적극적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시장 장기금리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점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다시 말해 물가가 예상과는 달리 장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Fed가 기준금리의 장기 목표치로 삼고 있는 균형금리 혹은 중립금리마저 저공비행을 지속하면서 장기금리의 눈높이가 좀처럼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런 장기금리의 억제가 Fed의 막대한 양적 완화 혹은 자산 매수의 결과라는 점이다. 따라서 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에 보유자산 축소를 서둘러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지만 경기 둔화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런 양적 긴축 강화는 오히려 경기침체 위험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금리 인상만 멈추거나 완화하면 앞에서 지적했던 회사채나 부실 기업부채의 위험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韓, 금리 인하 필요하다는 주장도
장·단기 금리 역전에 직면한 Fed의 이런 딜레마 못지않게 우리나라 역시 지난 11월 1년 만의 금리 인상 재개 이후 금리 조정과 관련해 더욱 골치 아픈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의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유출 위험을 회피하고, 대내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과열과 가계부채 급증 등 금융 불균형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정당화된다. 동시에 대내외적으로 급속한 경기둔화 위험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의 부담도 큰 게 사실이고,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 ‘실기론’을 넘어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겨우 진정세를 보이는 ‘부동산 불패론’을 다시 자극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앙은행의 역할에서 금융 안정의 중요성이 부각돼왔다. 아마도 새해는 한국과 미국 통화당국에 각자 장·단기 금리 역전과 기준금리 역전이라는 방식으로 공히 금융안정 책무와 관련해 중대한 시험무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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