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가가 '할 일' '말아야 할 일' 구별해야 경제 살아난다

입력 2018-12-19 17:56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관이 확연히 달라졌다. 정권 브랜드나 다름없는 ‘소득주도 성장’ 대신 경제활력과 투자, 혁신, 재도약 등을 언급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그제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스스로 반성하겠다”고 언급해 참석한 기업인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업무보고에 기업인을 앉힌 것부터 전에 없던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업혁신을 통한 미래 먹거리 창출”을, 환경부에는 “환경을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성장동력으로 인식해 달라”고 주문했다. 경제활력 회복에 모든 부처가 앞장서 달라는 당부다. 불과 얼마 전 거시지표 성과를 내세우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해 논란을 빚은 것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산업·지역경제 붕괴, 고용 참사 등 엄혹한 현실을 더는 외면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지지율 하락 속에 경제 실정(失政) 비판은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현 정부가 선한 의지를 가진 의사일지는 모르겠지만, 능력 없는 의사”라고 힐난했다. ‘소득주도 성장론’ 옹호자였던 그는 “지금 실패가 진단이 정확하지 못한 탓인데, 진단에 대한 복기조차 없다”고도 했다. “정신 안 차리면 ‘제2의 폐족(廢族)’이 될 것”이란 작심비판도 덧붙였다.

만시지탄이지만 정부가 잘못 꿴 단추를 다시 끼우려는 노력만큼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동안 현장의 호소를 외면한 청와대가 얼마나 변할지는 의문이다. “기업 기 살리기가 개탄스럽다”던 김현철 대통령 경제보좌관에 이어, 불과 며칠 전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기 살리기 대상은 재벌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니 경제계가 탄력근로제 확대, 원격진료 등이 실현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겠다는 것은 ‘합리적 의심’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말로만 경제활성화’를 외치는 게 아님을 입증하려면 투자 의욕을 꺾는 법·제도부터 손봐야 한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촛불 청구서’를 들이대는 지지층 반발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공유경제를 둘러싼 갈등을 풀어낼 역량과 의지를 갖췄는지 의문이란 시각도 많다.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는 ‘필요하면 보완’이 아니라 당장 하루가 급한 문제다.

나라 안팎의 경제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2.4~2.6%로 보는 경제전망 기관이 대부분이다. 경제가 치명적인 위기로 치닫지 않게 세심하게 관리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많은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가 높은 신용등급(AA)에 걸맞은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갖췄는지 의문을 제기한다”(권재민 S&P 한국 대표)는 지적이야말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활력 회복의 첫걸음은 국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부터 명확히 구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수시로 가격을 통제하고, 시장 개입을 넘어 직접 ‘선수’로 뛰려는 그릇된 욕구부터 자제해야 할 것이다. 4년 임기를 마치는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정부는 시장 간섭을 줄이고 기업이 열심히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기본으로 돌아가 보완하고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경청해야 할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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