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부 시범사업에 반기 든 바이오업계

입력 2018-12-20 18:19  

임유 바이오헬스부 기자 freeu@hankyung.com


[ 임유 기자 ] “시범사업을 한다고 또 1년을 허비할 겁니다. 그러다가 소비자 의뢰 유전자검사(DTC) 규제 완화는 지지부진해지겠죠.”

20일 한국바이오협회 산하 유전체기업협의회의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한 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마크로젠, 디엔에이링크 등 유전체 관련 기업 19곳이 소속된 유전체기업협의회는 이날 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DTC 시범사업을 보이콧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정부의 시범사업을 업계가 거부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12개인 DTC 허용 항목을 50개로 늘리기 위한 시범사업이다. DTC는 소비자가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 검사기관에 자신의 유전자 분석을 직접 의뢰하는 서비스다. 현재는 탈모, 피부 등 미용과 관계 깊은 웰니스만 허용돼 있다.

2년 전 DTC가 국내에 제한적으로 허용된 이후 줄곧 허용 범위 확대를 요구해온 산업계가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복지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에서다. 복지부가 의료계 눈치를 보느라 업계 의견수렴을 거친 정선용 아주대 의대 교수의 최근 연구용역 보고서 권고를 무시했다는 게 업계 판단이다. 정 교수는 복지부가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DTC 허용 범위를 121개로 늘릴 것을 권고했다.

복지부는 시범사업을 두 단계로 나눠 1년 이상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2~3개 업체를 선정해 예비 시범사업을 하면서 어떤 항목을 허용할 것인지 정하기로 했다. 그런 뒤 본격적인 시범사업을 할 방침이다. 하지만 업계의 보이콧 결정으로 시범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지게 됐다.

이날 비상대책회의에서는 정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 참석자는 “산업계 의견을 묵살하고 DTC에 대해 잘 모르는 의료계의 입김에 정부가 휘둘리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DTC를 허용하면서 2년 후 항목을 확대하자는 합의를 깬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DTC는 대표적인 바이오산업 규제다. 12개 검사 항목을 특정하는 ‘포지티브 규제’여서 소비자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내놓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일본 중국 등에서는 DTC 규제가 까다롭지 않다. 유전자 빅데이터산업도 해외에 내줄 판이다. 정부의 방침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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