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으로 동료 죽어가는데도 '우리말사전' 뜻 굽히지 않아
영화는 다음달 9일 개봉
[ 김지원 기자 ]
지난해 영화 ‘범죄도시’에서 극악무도한 조폭 두목 장첸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윤계상이 선량한 지식인으로 돌아왔다. 내년 1월9일 개봉하는 영화 ‘말모이’에서 윤계상은 1940년대 일제의 탄압 속에서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역을 맡았다. 극 중 류정환은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이 남긴 원고를 토대로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비밀리에 전국의 말을 모은다.
“장첸은 폭력성과 잔인함이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정환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깊이를 더했죠. 관객들은 그런 정환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면 표현조차 못 하나’ 하고 더 공감하게 될 겁니다.”
정환은 변절해 친일파가 된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 동료들이 고문을 당하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우리말 사전 만들기를 꿋꿋이 이어나간다. 윤계상은 “잘해내는 장면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촬영에 들어가니 어려워서 난리가 났다”며 “깜냥이 안되는데 멋모르고 덤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배우의 아이디어가 가미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이번 촬영장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데다 극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정환이기 때문에 너무 어려웠거든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버텼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전의 원고를 다 빼앗긴 장면을 연기할 때는 카메라 앞에서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더라고요.”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됐는지 묻자 윤계상은 이렇게 답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서 어떤 신념인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요. ‘말을 모으다’라는 뜻의 ‘말모이’라는 단어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의 가슴도 뜨거워질 겁니다.”
윤계상은 그룹 god 멤버로 활동하다 2004년 탈퇴한 뒤 연기에 전념했다. 2014년 다시 팀에 합류해 god는 내년 1월 데뷔일에 맞춰 20주년 콘서트를 연다. 윤계상은 연기에 대해서는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god 활동에 대해서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라면서 “20년 동안 똑같은 걸 해왔는데 이제는 팔다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많이 틀린다”며 웃었다. 윤계상은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대중과 내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꿋꿋하게 일을 해나갈 겁니다. 10점짜리 과녁을 여러 번 맞히는 사람보다 0점을 맞혀도 뻥 뚫어버리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지원 한경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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