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법복을 벗어야하는 이유

입력 2018-12-23 16:01   수정 2018-12-23 18:01


(이인혁 지식사회부 기자) “검사들이 법복 입는 데 반대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가 한 말입니다. 판사가 법복을 입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검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검사가 법복을 입고 말고가 무슨 문제가 되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검사는 판사와 마찬가지로 재판에서 법복을 입습니다. 간혹 법복 대신 정장을 입고 있는 검사도 있긴 합니다. 이들은 공판검사가 아니라 수사검사입니다. 현실적으로 검사가 수사와 재판을 모두 맡을 수 없기에 재판을 전담하는 공판검사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하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경우 수사검사가 직접 재판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수사검사를 제외한 공판검사는 법복을 입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피고인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법복이 따로 없습니다. 법복은 권위와 신뢰를 상징합니다. 자칫 검사가 상대방인 변호사(피고인)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재판에 참여하는 피고인·증인·배심원단 등이 무의식적으로 검사의 법복에 심리적 압박이나 위압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재판정에서 검사석과 피고인석 배치를 바꾼 것도 비슷한 이유였습니다. 이전만 해도 피고인은 지금의 증인석인 법정 한가운데 앉아서 재판장과 정면으로 마주봤습니다. 당시 학계와 변호사단체 등에서 “검사와 피고인은 동등한 재판 당사자이므로 대등하게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해 현재와 같이 양측이 대등하게 마주보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당사자대등주의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당사자대등주의란 재판에서 대립하는 양쪽 당사자(검사와 피고인·변호사)의 지위를 평등하게 하여 서로 대등하게 공격과 방어 수단을 줘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는 형사소송법의 기본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일맥상통 합니다. 범죄 혐의를 받더라도 재판부에서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검사와 피고인이 동등한 위치여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피고인에게 묵비권·변호인 선임권 등이 있는 것도 당사자 대등주의를 반영한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선 복장에서부터 당사자대등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검사와 변호사는 모두 법복을 입으며, 미국은 양측 모두 법복을 입지 않습니다.

국내에서는 한때 변호사도 법복을 입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11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의 위상제고와 법정에서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법복착용이 필요하다”며 법복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번거롭다” 등 이유로 반대의견이 더 많아 흐지부지됐습니다.

지난 19일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서 피고인 측 황정근 변호사가 읊은 영화 변호인의 대사가 화제였습니다. “재판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피고인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그 어떠한 관행도 인정돼서는 안 된다”

단순 구속만 되거나 범죄 혐의만 받아도 지레 ‘유죄’로 인식되는 등 ‘유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하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검사만 법복을 입는 현실은 피고인의 낮은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면이 있습니다. 피고인 권리보장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끝) /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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