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본격화하는 베이비부머 은퇴
전문성 못살리고 단순노무직
3명 중 2명 月200만원 못받아
[ 성수영 기자 ]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생산관리업무를 하다가 지난해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으로 재취업한 A씨(55)는 자신을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그는 부장으로 명예퇴직했다. 대학생인 두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몇 달간의 노력 끝에 지인을 통해 간신히 경비원 일자리를 잡았다. 급여는 월 150만원 안팎 수준. A씨는 “더 젊고 ‘스펙’이 뛰어난 경쟁자들을 제치고 돈을 벌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했다.
경제 발전의 주역이었던 중장년층이 구직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지난 10월 발표한 ‘2018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퇴직 후 ‘재취업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구직자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8%였다. 중장년층이 직장에서 퇴직한 이유로는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가 56.6%로 가장 많았다. 정년퇴직(21.4%), 사업부진 또는 휴·폐업(13.3%)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재취업한 일자리의 질은 이전 직장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통계청의 ‘2017년 기준 중장년층 행정통계 결과’를 보면 2016년 미취업 상태였다가 지난해 취업한 40~64세 근로자 중 66.9%는 월평균 임금이 200만원 미만이었다. 월급이 100만원 미만인 비율도 13.9%에 달했다.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중장년층이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단순노무직으로 내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견법이 대표적 사례다. 55세 이상 고령자, 금형 주조 용접 등의 ‘뿌리산업’만이라도 허용하자는 파견법 개정안은 지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대기업에 근무한 고령자가 기술을 살려 협력업체로 가면 파견법 위반에 해당한다. 대한은퇴자협회 등이 “전문성을 살려 일하고 싶다”며 파견법을 개정해달라고 애원해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근로자 간 ‘빈익빈 부익부’를 유발한다며 반대해서다.
고령 은퇴자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은퇴자가 다시 노동시장에 들어와 일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대로 간다면 현재 20~30대들이 30여 년 뒤 비슷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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