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유니레버·소프트뱅크…
13.5억명 소비시장 선점 경쟁
모디의 '개혁 3종세트' 적중
외국인 투자 작년의 두 배 넘어
[ 김현석 기자 ]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글로벌 기업들의 최대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영향 등으로 경제 성장세가 한풀 꺾인 중국 대신 수억 명의 인구가 새로운 소비층으로 급부상 중인 인도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한때 ‘관료주의의 지옥’으로 악명높았던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경제 개혁에 힘입어 ‘달리는 코끼리’로 거듭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현지시간) 투자정보업체 딜로직을 인용해 올해 인도에서 이뤄진 M&A가 937억달러(약 105조원) 규모로 전년에 비해 52%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인도가 1990년대 경제 개방을 본격화한 이래 최대 수준이다.
특히 외국 기업들이 인도 기업을 사들이거나 투자한 규모는 395억달러에 달해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투자 규모 328억달러를 넘어섰다. 3년 전인 2015년 중국은 392억달러, 인도는 160억달러였던 걸 감안하면 위치가 확연히 뒤바뀐 셈이다.
월마트는 지난 5월 160억달러를 투자해 인도 전자상거래 기업인 플립카트의 지분 77%를 확보했다. 올해 가장 큰 거래였다. 유니레버는 이달 초 인도 음료회사인 홀릭을 37억5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중국 알리바바 등은 최근 인도의 음식배달 앱(응용프로그램)인 스위기에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소프트뱅크가 이끄는 투자자들은 지난 9월 호텔예약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오요(OYO)호텔에 10억달러를 집어넣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에 투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성장잠재력이 뛰어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인도 경제가 내년 3월에 끝나는 올 회계연도에 7.3%, 내년도에는 7.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구가 13억5000만 명에 달하는 데다 외국인 지분 제한 철폐 등 모디 총리의 규제 개혁이 성과를 내고 있다.
2030년이면 인도 국내총생산은 5조달러로 지금의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인도 증시 성과에서 드러난다. 올해 인도 센섹스지수는 4.2% 올랐다. 주요국 증시가 모두 급락해 약세장에 진입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인도 루피화 가치는 급락했다가 최근 회복되고 있다.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에너지 수입국인 인도의 화폐 가치가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디 정부는 화폐 개혁에 이어 파산법과 조세 제도를 바꿨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들의 직접 투자가 더 쉬워지고 안전해졌다. 인도가 지난 10월 세계은행이 발표한 기업환경평가 순위에서 23계단 상승한 77위에 오른 게 이를 대변한다.
핵심은 파산법 개정이다. 과거 인도의 파산 절차는 평균 4년이 걸리고 회생률도 25.7%로 낮았다. 하지만 모디 정부가 파산 절차를 9개월로 제한하고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면서 수많은 부실기업이 파산을 신청해 경매에 나왔다. 올해 파산 절차를 밟은 회사가 3000여 개에 달한다. 타타스틸은 파산 경매에 나온 부샨스틸을 83억달러에 사들였다.
주마다 다르고 복잡했던 간접세는 단일 세율로 통합했다. 바클레이즈 인도법인의 프라모드 쿠마르 대표는 “전반적으로 각종 딜이 일어나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그동안 글로벌 기업들의 핵심 투자처였던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등에 따른 성장률 저하, 인건비 상승, 자국 기업 우대 정책 등으로 해외 기업들의 투자가 점점 줄고 있다.
각국 국부펀드와 연기금도 인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지방정부 자산과 인프라 투자 등을 노리고 있다. 과거 가족 위주 사업에 집착하던 인도인들도 기업을 팔아 돈을 벌고 있다. 코탁투자은행의 에스 라메시 최고경영자는 “인도 기업의 소유 구조가 가족 중심에서 투자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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