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관문' 넘을까
2000년 경의선 연결 착공식
미·북 관계 악화로 첫 삽도 못 떠
비핵화 협상 진전 없으면 착공식 아닌 착수식 그칠 수도
철도 연결에 38조 규모 소요
남북 '혈맥 잇기' 감성적 접근
물동량 등 수요조사 부실 논란
[ 박동휘 기자 ]
“사실 오늘 이 착공식은 남북 간 세 번째 거행하는 착공식입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6일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석해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민족의 ‘혈맥’을 잇는 미완의 꿈이 실현되기 바란다는 의미였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고 지적한다. 교착 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지 않는 한 이번 행사는 ‘착공 없는 착수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에 대한 논란도 여전히 뜨겁다.
어렵게 첫발 뗀 철도·도로 연결
이날 열린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연내 착공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불거지며 한때 약속 이행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다 지난 18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착공식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매듭 지으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유엔도 최종적으로 착공식을 승인했다.
남북의 ‘혈맥 잇기’ 시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정 전 장관은 “2000년 9월18일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 시절에 경의선 철도 연결 착공식이 있었다”며 “그 공사가 1년도 채 안 돼 중단되는 바람에 2002년 또 한 번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열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첫 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최대 숙원 사업으로 추진했다.
이전의 착공식은 지금처럼 국제사회의 엄격한 대북 제재가 없던 때여서 실현 가능성이 꽤 높았다. 하지만 2001년 조지W 부시 대통령 취임과 함께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꼽는 등 미·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미완으로 종결됐다. 세 번째 착공식 역시 실제 착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를 의식해 “착공식이라기보다는 착수식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TKR 타고 유럽까지?
가장 큰 난관은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협상이다. 당초 정부 구상대로라면 이번 착공식은 남북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질 터였다. 연내에 미·북 2차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까지 이뤄져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국면이 펼쳐짐을 알리는 성대한 이벤트로 만든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실제 ‘연내 실현’이 이뤄진 것은 현재로선 착공식 하나뿐이다. 향후 일정도 불투명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착공사에서 “본격적으로 철도·도로가 착공되려면 보다 자세한 조사와 설계 과정이 필요하다”며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실질적인 착공과 준공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도 넘어야 할 과제다. 철도 연결 사업에 우호적인 철도연구원조차 약 38조원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적정 수준의 화물 물동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등 손익계산도 제대로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가 혈맥 잇기라는 감성적인 주제에 꽂혀 합리적인 타당성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반도종단철도(TKR)의 ‘탈(脫)한반도’를 위한 필수 협력국인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도 장기 과제다. 이날 참석한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중국 단둥(신의주 인근)까지는 고속철이 연결돼 있다”며 “앞으로 (중국 고속철이) 평양까지 연결될 날이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성공동취재단·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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